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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 살고 싶었던 어느 날

베른, 인터라켄, 융프라우요흐를 지나 그린델발트까지 엽서 같은 풍경들

by 앨리스

스위스 여행은 처음이라 나도 기대하는 게 많았다. 다녀온 사람들 모두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했다며 저절로 힐링이 된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이 날 스위스를 다니면서 그 말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20170626_092320.jpg 트램길이 있는 베른 구시가지

떼제베를 타고 도착했던 바젤에서 베른까지는 두어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베른의 첫인상은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세월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뜻이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쭉 서있고, 길은 매끈한 아스팔트가 아닌 벽돌길에, 창문 앞 발코니에 알록달록한 꽃 장식까지. 이따금 시대극 영화에서 보던 풍경하고 비슷했다.


20170626_094621.jpg 소소하지만 시간에 맞춰 종 치는 퍼포먼스가 있었던 시계탑
20170626_101136.jpg 높이 솟아있는 베른의 교회
20170626_103616.jpg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한 아이 아빠의 모습


베른 구시가지를 걷는 동안 귀에 꽂아둔 수신기에는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 흘러나왔는데, 사실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래된 도시 안에 고풍스러운 풍경들이 있고, 날씨가 정말 좋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색지를 잘라 붙인 듯한 하늘색 하며, 강렬하게 쏟아지는 태양빛까지!)


20170626_104248.jpg 이 물빛 실화인가...
20170626_110211.jpg 베른의 베스트 포토

구시가지를 걷는 동안 심드렁했었는데, 건물 사이를 빠져나와 초록빛 강물을 보는 순간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보통 강물이나 바닷물은 짙푸른 색인 경우가 많지만 이 곳은 석회 성분 때문에 물이 초록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덕분에 사진을 찍었더니 필터를 끼얹은 것 같은 색감의 사진이 나왔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서 한동안 엄마와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난다.



20170626_114220.jpg 호수의 나라 스위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것이었다. 보통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6월 하순에 낮이 가장 긴 하지 근처라 스위스의 날씨는 꽤 따뜻한 편이었는데,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면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라고 했다.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 말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20170626_115920.jpg 인터라켄 역 앞. 뭔가 물이 흐르는 조형물이...

스위스 도시 이름은 잘 모르지만 '인터라켄'은 익숙했다. 수많은 유럽여행 블로그 글, 여행 후기 등등에서 언급되던 곳인데 내 기대만큼 큰 동네는 아니었다. 알프스를 오르기 위한 거점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20170626_135018.jpg 열차를 기다리며

융프라우요흐까지는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없고 중간에 내려서 갈아타야 한다. (내 기억에 두 번 갈아탔던 것 같다.) 열차 플랫폼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높은 산에서 이 곳이 스위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70626_150009.jpg 천천히, 산 위로 열차가 올라가는 중
20170626_150739.jpg 이거 약간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느낌인데

열차는 경사가 급한 산 위를 오르는 것이다 보니 빠른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천천히, 조금씩 땅 위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어느 정도 산 중간에 다다르면 비로소 동화 같은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든지 '플란더스의 개' 애니메이션 같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푸른 초원 한가운데 집이 있고, 그 위로는 하얀 구름이 떠 있는 새파란 하늘까지. 커다란 양치기 개와 스위스 전통 복장(?!)을 입은 소녀가 바로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강렬한 색감의 풍경 덕분에 아무런 보정 없이 깨끗한 사진들을 얻을 수 있었다.


20170626_152147.jpg 이제 슬슬 춥다

중간 기착지에 도착하니 하얀 눈이 덮인 산이 더욱 가까이 보인다.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연스레 겉옷을 꺼내 입었다. 여기도 서늘한데 저 꼭대기에 올라가면 얼마나 추운 걸까...


20170626_162743.jpg 융프라우요흐의 만년설
20170626_165738.jpg 한여름에 보는 새하얀 눈. 진짜 춥다...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는데 이제는 고산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뛰거나 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천천히 다니라고 했다. 그리고 숨이 가빠지거나 머리가 어질어질할 수도 있다고... 확실히 산소가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지금이야 기술이 발달해서 산을 뚫어서 도로를 내기도 하고, 튼튼한 케이블카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 철로는 산의 경사면을 따라서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100년도 더 된 철로로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추위에 떨다 보니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는데 한여름에 눈으로 가득 뒤덮인 산을 보고 있자니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쨍쨍한 햇볕이 푸른 초원에 내리쬐고 있었건만... 그리고 여기가 유럽의 지붕이라더니 정말 너무너무 추웠다. (....) 제대로 패딩을 챙기지 않은 나 자신을 치고 싶었지만 별 수 없다. 실내에서 초콜릿 먹으며 몸을 녹이는 수밖에...



융프라우요흐에서 내려와 우리는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올라갈 때 탔던 기차와는 다른 방향으로 내려왔는데, 덕분에 아기자기한 마을에 묵을 수 있었다.

20170627_062054.jpg 그린델발트에서 묵었던 숙소의 풍경

이 곳의 숙소는 모던한 호텔은 아니었지만, 실내가 나무로 되어있었고 작은 발코니는 알프스 산을 향해있었다. 발코니에 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 초원 위에 통나무집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조금 전원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 엄마는 유럽 여행 중에 지나 온 숙소 중 이 곳을 가장 좋아했다. 실내 사진을 남기지 않은 게 좀 아쉽다.


20170626_195158.jpg 그린델발트의 비내리는 풍경
20170626_200249.jpg 추위는 퐁듀로 잊어보자

운이 좋았는지 우리가 융프라우요흐에서 내려오던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보면서 융프라우요흐를 올라갈 때 봤던 맑은 날씨의 풍경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퐁듀를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는데, 뭔가 치즈에서 술맛도 나는 것 같고 생각보다 치즈가 너무 짜서 저녁을 맛있게 먹지는 못했다. 내가 상상한 퐁듀는 좀 더 달짝지근한 느낌이었는데...



스위스의 오래된 도시, 눈 덮인 산, 푸른 하늘, 초록빛 강물까지 모두 보고 나니 이 나라가 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 상상만 하던 모든 자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거기다 탁 트인 공간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을 때의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스위스의 공기를 잔뜩 가져다가 미세먼지 가득한 날 풀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참, 이 나라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뭔지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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