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일기, 1월 23일
[사진설명]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파란 하늘. 오래간만에 깨끗한 공기를 마셨다.
미세먼지 가득하던 공기가 사라진 자리에 한파가 찾아왔다. 날씨가 춥긴 했어도 오래간만에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매일 날씨와 함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된 지 꽤 오래다. 분명 내가 어릴 때는 봄에 황사 말고는 공기가 나쁘다는 생각을 별로 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몸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공기가 안 좋아졌다.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고, 심한 날에는 피부 상태가 안 좋아지거나 코 안에서 먼지 냄새가 날 때도 있다.
작년 봄쯤이었나, 진지하게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녁이 있는 삶, 더 나은 복지 혜택, 미래를 위한 투자,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공기의 질 때문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요소는 꼭 내가 사는 땅을 바꾸지 않아도 어느 정도 내가 '노오오오력' 하면 조금이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는데, 이 땅의 공기가 안 좋은 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재벌집 딸이라고 해도 매일 산소마스크 끼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갑자기 중국이 동쪽 해안가에 있는 공장을 몽땅 하루아침에 폐쇄시키지 않는 한 내가 이 나라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살기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나라 가서 사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봐도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나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바이링구얼이 아니고, 꼭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무작정 해외로 나갈 만큼 용기가 있지도, 짧게나마 내가 여기서 만들어 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나는 공기청정기와 빨래 건조기를 샀다. 환기를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 집안 공기라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다. 거금을 들였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깨끗한 공기를 위해 사람들이 투자하는 비용이 너무 큰 것 같다. 미세먼지 마스크나 공기청정기처럼 물건을 사느라 돈을 쓰기도 하지만, 나처럼 이민 생각을 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점점 이 나라의 공기가 안 좋아져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면 그것 또한 문제일 테고. 이런 환경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하니, 공기의 질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미세먼지 때문에 이민 생각하지 않고 매일 아침 파란 하늘을 마주하고 싶다.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가 일상이 되어 미세먼지 알려주는 앱도 지우고, 황사 마스크를 더 이상 구매하지 않으며, 날씨 서비스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표시해주지 않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