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일기, 2월 10일
오늘 남편과 같이 유명하다는 곳에서 타로점을 봤다. 동료들이 어찌나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지, 이 곳을 여러 번 다녀온 사람도 있고 내 주변에서 여기 다녀온 사람만 해도 꽤 됐었다.
사실 나는 점 보는 걸 엄청나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특히 타로는 '내가 궁금한 걸 물어봐야'하는데 궁금증은 한 두 개면 동나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냥 설명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간이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사주는 내가 뭘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풀이를 해 줘서 듣는 재미가 있긴 했었다.
그런데 최근 남편에게 큰 변화가 있어서 오늘 한 번 같이 타로점을 보기로 했던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로는 궁금한 걸 물어봐야 한다. 가장 먼저 가볍게 전체 운세를 한 번 보면서 궁금한 걸 얘기하라고 하는데, 우리 둘 다 '회사' 말고는 크게 궁금한 게 없었다. 직장인이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고, 둘 다 건강에 큰 문제도 없고 집에 고양이 한 마리를 포함해서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도 별 일 없이 잘 지내니 가족운도 궁금한 게 없었다.
타로 봐주시는 분이 건강이나 가족운은 지금 크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면 굳이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부분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없는데 굳이 물어봐서 전전긍긍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 내 주변에서 이 분한테 가족이 아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도 있어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물어보기로 했다.
약 한 시간 동안 8가지의 질문을 할 수 있는데 부부라서 그 질문을 나눠서 쓸 수 있었다. 우리처럼 궁금증이 단편적인 사람들에게는 매우 잘 된 일이다. 나는 혼자서 질문 8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한 기분이 든다.
타로점을 보면서 신기했던 건 구체적인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물어보는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한 것일수록, 생각을 많이 한 것일수록 답변해 주는 사람도 굉장히 자세한 답변을 해 주었다. 남편의 첫 번째 질문이 그랬는데,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그분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대로 카드가 나오고 조언을 해 주었다.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분이 1시간 내내 좋은 얘기만 해 준 건 아니었다. 어떤 건 절대 안 되고, 이런 건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얘기했다.) 어떻게 보면 타로점을 보는 이 모든 과정이 바넘 효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남편이 처한 상황이 약간 특수해서 마치 우리 상황에 꼭 맞는 말을 해 주는 것처럼 들렸다.
한 시간 동안 타로점을 보고 나니 이게 가벼운 정신과 치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적인 증명은 되지 않아도 내 마음속 고민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는 과정인데 이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우리는 이 과정을 마치고 매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내 동료의 표현에 따르면 '듣고 싶은 말을 해 준다'는 것, 결국 내 속의 답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답정너'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확신이 없었던 것도 그 사람의 목소리와 카드로 들으면 이제 그렇게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여하튼, 다 잘 된다고 하니까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