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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Feb 11. 2018

눈이 온다

열일곱 번째 일기, 2월 11일

[사진설명] 오늘 늦은 저녁의 모습.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순간은 눈 내리는 밤에 싫다는 감정이 먼저 들 때였다.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나, 신발 더러워지는 건 싫은데, 내일 아침에 길도 막히겠다 등등. 어릴 때는 눈이 펑펑 내려서 한가득 쌓여있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 아이러니하게 내 고향은 요즘 몇 주째 엄청난 눈으로 고통받고 있다 -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장면을 상상만 해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끼리 장난치기도 좋았고, 막연하게 포근하다고만 생각했다. 


눈이 무섭다고 느낀 건 노르웨이에서 겨울을 맞았을 때였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그랬지만 눈이 쌓이고 나서의 도시가 너무나 고요해서 무서웠다. 그곳이 서울에 비해 인구밀도가 훨씬 낮기 때문이었던 것도 있지만, 새벽 시간 가로등 불빛만 있는 곳에 내가 눈 밟는 소리만 들릴 때, 너무 조용해서 시끄러운 곳에 있는 것처럼 귀가 아프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도시의 소음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내리면 통행량이 줄어서 그런 걸까. 


출근만 하지 않는다면 눈 내리는 풍경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질 텐데, 내일 아침 나의 몸을 꾸역꾸역 이불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전면 유리창이 있는 거실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 내리는 걸 보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마 이 말을 우리 엄마 아빠에게 한다면 그것도 하루 이틀이라고 하실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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