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일기, 2월 12일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픽션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며칠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회사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내가 이 직업을 영속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그래도 설마, 아직 나는 나이도 젊고 경력도 적당한데 나를 내쫓을까. 나를 내보내면 이 회사는 분명 손해일 것이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회사는 한 가지 소식을 통보했다. 곧 회사 문을 닫을 것이고 적당한 보상을 줄 테니 이제 알아서 나가라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내보내다니, 그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달 남짓이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 건가,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대출금과 보험금 등 온갖 고정 비용이 내 머릿속을 떠돌았다.
남들은 내가 젊어서 이직하는 게 절대 어려운 일은 아니라지만, 이직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이 업계에서 나름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업무량은 훨씬 더 많아지고, 연봉은 20% 이상 낮추고, 게다가 생전 가 본 적 없는 도시에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다른 업계로 가자니 그간 쌓은 내 커리어가 아깝기도 하고 그쪽에서 나를 반겨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취업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이런 결말을 맞이하다니. 우리 엄마 아빠 세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생직장은 아니어도 최소한 내가 내 발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는 여기에 있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했으나 회사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냉혹했다. 급여와 근무기간을 바탕으로 한 최소한의 보상을 약속했고, 그 이상의 복지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의 동료들이 있었음에도 회사는 유예기간을 더 주거나, 예외사항을 두지 않았다. 이후의 일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고, 그렇게 인간적이었던 회사는 완전히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와 그 속의 동료들을 동일시했던 것이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 온 조직문화 또한 회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회사에서는 사람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호했고 냉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인은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간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사이 잊고 있었을 뿐.
아마 나는 곧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성실하게 일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회사 없이 살아갈 방법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다른 공부가 됐든,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됐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나 '프랜차이즈 기반 자영업'말고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