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에서
언제였나 주민센터에 떼야할 서류가 있어서 이것저것 발급을 받았다.
그 서류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있었다.
이제는 남이 된 남이 아닌 이름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였다.
이제는 슬픔도 내성이 생겨 그저 담담히 서류를 보다 '사망'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도 없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친할아버지는 어떤 병을 계기로 아파 말이 어눌하고 멍하다고 했었다.
그래도 떠올려보면 나를 향해 늘 웃어주시던 분이었다.
그 기억만은 마음 한켠에 따뜻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 야밤에 큰 부부싸움이나 양가 부모가 다 모였던 날이 있었다.
친할머니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아빠에게 우리 집에 가자며 재촉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집사람이 많이 모자라 그렇다며 대신 죄송하다고 손을 잡고 사과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 집안 식구 중 가장 정상이었던 분이었다.
살다가 종종 그런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나도 모르는 새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한 번 가보지 못한 게 슬펐다.
어디에서, 어쩌다,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 수도 없는 사실에 가슴이 사무쳤다.
엄마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작별에 능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사의 노래처럼 굿-굿바이는 잘 없다.
이미 오래전 남이 된 사이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그래, 할아버지만은 밉지 않았나 보다.
가족이었던 한 사람이,
언제, 어떤 이유로, 어디에서 세상을 떠났는지 모른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한참 시간이 흘러 꿈에 할아버지가 나온 날이 있었다.
어쩌면 못다 한 인사를 하러 왔던 게 아닐까 혼자 위안을 삼아봤다.
예고 없는 작별이란 참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