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선생님께 바칩니다.
나는 나태주 시인님을 참 좋아한다.
다들 그럴 것이다.
국민시인이지 않은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나 쓸 수 없는 그런 시를 쓰는 사람,
슬프기도 했다가 따뜻하기도 했다가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
지금 보면 내가 쓰는 시들은 나태주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 눈에는 닮은 구석이 많다.
닮았다는 건 내가 따라한 구석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게 책으로만, 글자로만 만날 수 있었던 분을 실제로 뵌 역사적인 날이 있었다.
역시 서울에 살면 유명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앞 공간에서 나태주 선생님의 강연이 열린다기에 종종걸음으로 찾아갔다.
가까이서 한참을 바라본 선생님은 상상했던 대로, 글 그대로였다.
강연이 끝나고 떠나는 선생님을 뒤따라갔다.
혹시나 말이라도 한마디 붙여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나와 같은 사람이 제법 있었다.
다들 나태주 선생님의 책들을 손에 가득 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기약 없던 사인회가 시작된 것이다.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빈손으로 선생님 옆에 앉았다.
말이 안 되는 순간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모든 사람에게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시를 적어주시는 시인님께 저는 사인은 필요 없다는 말씀을 드리니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표정이 생각이 난다.
아마도 '이 이상한 녀석은 뭐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대신 나는 내가 적고 그린 시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기회는 흔치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들었던 말씀이 기억난다.
"너 열심히 하는 거 내가 알겠다" 라며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셨다.
그리곤 명함을 건네주셨다.
왜였을까, 애쓰는 청년이 기특해 보여서였을까.
언젠가 묻고 싶다, 그때 왜 명함을 주셨나요.
그날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과 위로를 받았다.
그게 선생님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만남이기에 살면서 언제 또다시 뵐 수 있을까 생각만 하던 날들이었다.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에 부리나케 신청을 했고,
현장에서 시평을 해주는 이벤트를 연다기에 안될 걸 알면서도 서투른 시를 써서 제출도 했다.
다시 만난 선생님은 그때와 똑같으셨다.
여전히 따뜻했고 정겨웠고 귀여우셨다.
기다리던 시평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해 단 한 명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명이라니 나는 더더욱 안 되겠거니 생각했다.
선생님이 직접 읽고 뽑았다며 출판사에서는 설명했다.
나는 간절히 원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 시를 낭독했고 선생님께 말도 안 되는 칭찬을 받았다.
사실 그 시는 월간지 공모에도 떨어진 시였는데 말이다.
머리 털나고 얻은 가장 큰 칭찬이었다.
북토크 뒤 여김 없이 찾아온 사인회 시간에도 나는 여전히 사인은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다.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셨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았다.
인사 후 떠나는 내 뒤통수에 " 계속 써, 계속 써야 해"라고 외치듯 말씀하셨다.
자부심이라는 게 없던 내 인생에 나는 커다란 훈장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던,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대도 계속 썼던 시들이 나태주 선생님에게 닿을 줄이야.
나는 그날에서야 '나는 시를 써도 된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저 그런, 마이너 한, 별다를 거 없는 글을 쓴다고 늘 생각해 왔었다.
그런 내게 너는 계속해서 시를 써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것만 같았다.
사실 그 누구도 내게 쓰지 말라고 한 적은 없지만 나는 늘 내 재능을 의심해 왔었기 때문이리라.
그 후로도 국제도서전에서 열심히 사인을 하고 계시던 나태주 선생님을 우연히 보았다.
우리의 다음 만남은 언제가 될까.
우리라고 감히 불러도 될까.
언제쯤 나의 시를 엮어 만든 종이책을 건네드릴 수 있을까.
나는 나태주 선생님의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
나는 여전히 나태주 선생님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감성은 뒷전인 시대에, 어쩌면 시가 죽은 시대에 선생님은 나의 영원한 캡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