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나온 듯 눈앞이 서서히 밝아온다. 다시 아침이다. 다시 시작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뜬다. 옆에는 요즘따라 아빠를 무척이나 따르며 밤마다 ‘아빠랑 잘 끄야'라며 애교를 부리는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다.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가며 잠을 밀어낸다. 딸의 귀여운 눈가에는 달콤한 잠의 형상이 눈썹 처마에 맺힌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나는 서둘러 딸을 안고 거실로 나가서 리모컨을 찾아 TV를 켠다. 중년의 희미해져 가는 총기도 함께 켜졌으면 좋으련만… 습관적으로 벽에 걸린 달력과 시계를 보며 현실감각을 찾는다. 그래 나는 두 아이의 아빠였지? 지금은 2024년 9월이구나? 아쉬움과 미련, 감사, 설렘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나를 채운다. 출근시간에 쫓겨 생각은 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소파에 다시 반쯤 잠든 딸아이를 향한다. 시간을 보니 벌써 8시다. 나는 작년 9월에도, 올해 9월에도 라테파파이자 워킹대디다. 때로는 아빠, 남편, 아들, 사위, 친구, 상사로서 해내야만 하는 것들에 잠식되어 진공 상태의 커다란 풍선 안에 갇힌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매다 벽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래도 9월이 왔다. 다행이다. 감사한 마음이 9월에는 자주 든다. 아이들이 잘 자라 주었고, 학교에서 잘 적응해 주었고, 나와 와이프, 양가 부모님의 건강함이 9월쯤 되면 정말 감사하다. 지금껏 잘해온 것처럼 남은 10~12월도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나에게는 9월이 안도이다. 숫자 9의 형상처럼 둥근원을 잘 돌았고, 남은 기간은 무리하지 않고 원심력을 이용해서 잘 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청춘의 시절처럼 나만 바라볼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딸의 가방 속 과제물과 학교교육과정 안내문, 유치원 등원버스 시간표, 아내가 준비해 둔 아이들 옷을 입히며 계절을 가늠하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사랑, 충만함, 감사함을 양껏 충전한다. 이처럼 9월은 멈춤이자 안도이자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는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