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양대 산맥인 설, 추석 명절이 나는 많이 기다려지곤 했다. 국민학교 시절 용돈은 평균 오백 원 정도로 기억된다. 어머니께서 검정 핸드백 안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용돈은 번개처럼 집 앞 문구점에 달려가서 딱지나 구슬, 아폴론. 불량식품을 사 먹고 나면 금방 사라지곤 했다. 중년이 된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가끔 학교 운동장에서 구슬치기를 하면 내 구슬은 유리인데, 옆반 친구의 구슬은 옥 또는 쇠구슬이 등장하기도 했다. 친구가 만면의 미소를 띠운 채 구슬을 날리면 내 작은 유리구슬은 옆구리가 터지곤 했다. 패잔병처럼 집에 터벅터벅 돌아오면 깨진 구슬 같이 서러운 밤이었다. 그래서 난 명절을 학수고대했다. 마음껏 참아왔던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명절이 오기 전 몇 달 전부터 희망리스트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기록해 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예상수입 시나리오를 작성해 본다. 삼촌 1만 원, 외삼촌 2만 원, 할머니 1만 원, 외숙모 1만 원 등 나름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작성해 왔던 것이다. 계산 결과 현금흐름이 나쁘지 않으면 온갖 상상으로 연필을 손에 쥔 채 발그레 웃으며 잠이 들곤 했다. 그 순수했던 시절이 참 그립다. 친척들이 혹시나 안 올까 봐 몇 번을 가슴 졸이며 부모님께 묻고 또 묻던 나의 모습, 동네 문방구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려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들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문구점 사장님에게 명절에 꼭 사러 올 거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나의 수입에 대해서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던 모습. 이제는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매년 명절이 올 때마다, 어린 조카들과 아들, 딸을 보면서 나의 어린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요즘은 귀여운 녀석들에게 1만 원권을 쥐어 주면 인사 소리가 크지 않다. 한 5만 원권 정도 주어야 환한 미소와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해 준다. 정말 고맙습니다. 요긴하게 잘 쓰겠습니다. 다음 명절에는 아들, 딸, 조카들 손익계산서를 한번 슬며시 훔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