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한 자만이 볼 수 있는 세상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오랜만에 달렸다.
갈까 말까. 머릿속에서 수십 번 고민하다가 그냥 운동복을 입었다.
그 순간부터 몸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릎 보호대를 찾고, 양말을 신고, 가방을 멘다.
자, 다시 출발선에 선다.
오늘의 목표는 11km.
천천히 첫 발을 내디딘다.
몸은 무겁지만, 한 걸음을 뗐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취감이 밀려온다.
호흡과 리듬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주변 풍경도, 스쳐 가는 사람도 희미해진다.
온전히 ‘나’만 남는다.
달리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내 몸을 벗어나 허공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
이게 달리기 명상이라는 걸까.
러닝의 법칙이 있다.
시작이 어렵고, 달리는 중간이 더 어렵다.
5km 지점.
몸이 무거워지고, 발이 땅에 붙은 듯하다.
멈추고 싶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할 수 있다.”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딱 한 걸음만 더.”
스스로를 설득하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저 가로등까지만, 저 벤치까지만.
그런데 이상하다. 목표 지점을 넘어섰는데도 계속 뛰고 있다.
발이 저절로 앞으로 나아간다.
달리기 앱이 7km를 알린다.
‘이제 4km 남았다. 완주할 수 있겠어.’
자신감이 생긴다.
속도를 조금 올려본다.
그런데 안심한 순간,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진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무겁다.
“이만하면 됐잖아. 7km만 뛰어도 충분해.”
머릿속에서 멈출 이유를 만들어낸다.
못 느꼈던 강풍이 매섭게 몰아친다.
이제야 추위가 느껴진다.
‘이 추위에 뛴다고 뭐가 달라질까?’
‘지금 멈춘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
포기할 이유는 끝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것이 가짜 감정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몸이 무겁고 의욕이 바닥났던 5km 지점을 넘었듯이,
7km의 벽도 넘을 수 있다.
그리고 조금씩 힘이 돌아온다.
추위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이 걷히고, 긍정이 다시 온몸을 감싼다.
나는 계속 달린다.
러너스 하이, 날아오르는 순간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다.
붕, 떠 있는 느낌.
바람이 등을 살짝 밀어준다.
“이게 러너스 하이인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이라도 뛸 수 있을 것 같다.
의욕이 되살아나고, 온몸에 에너지가 채워진다.
러닝이 주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달리기 앱이 10km를 알린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데 마지막 1km가 너무 길게 느껴진다.
이제 그만 뛰어도 될까?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닐까?
몸은 점점 무거워지고,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린다.
멈추고 싶은 이유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완주를 선택했고, 이미 완주했다.”
눈을 감고 11km 지점의 나를 떠올려 본다.
다 왔다. 포기하지 않으면 곧 만날 수 있다.
완주의 순간
마지막 1km는 체감상 3km처럼 길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버거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십 번 왔다.
그런데도 나는 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앱이 ‘FINISH’를 외친다.
완주.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만 보이는 세상.
그곳에 도착했다.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러닝 속에는 삶이 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위기가 항시 찾아온다.
그때마다 기억하자.
포기하고 싶을 때,
멈추고 싶은 순간,
그 지점을 넘어서야만 볼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고통은 나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으로 가기 위한 도움닫기 과정일 뿐이다.
매일 읽고, 쓰고, 달립니다.
저스트 두 잇. 위 캔 두 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