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 때 '일 못'이었다.
이 글은 2018년 9월 14일 페이스북 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 게재한 글입니다.
일 못하는 후임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일 잘하는 선임은 일 못하는 후임도 잘 가르켜서 빨리 제 역할을 하게 한 후, 결국은 본인을 돕게 만들더군요. (=제가 일 못 후임이었을 때 이야기)
같은 걸 물어봐도 어휴-하고 한숨부터 쉬는 선임이 있는 반면에, 질문하면 짧게라도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한 후, 본인 시간 날 때 메일로 답변해 준 후 다시 자리로 불러서 구두로 한번 더 설명해주던 선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팀 내에서는 당연하고 타 부서에서도 엄청나게 능력을 인정받던 분 이구요.
저도 몇년 뒤에 알게되었습니다. 후임이 물어오는 질문에 그렇게 메일로 답해주고 + 구두로 다시한번 더 설명해준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성가신 일인지.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과정을 한달 정도 하고 나면 오히려 후임이 팍팍 성장하는게 느껴질 정도로 일잘로 변해있습니다. 진짜 잘하는 친구들은 제가 요청한 업무는 당연하고, (제 니즈를 잘 파악) 어쩔 땐 제가 놓친 부분까지도 팔로업해주는 경지(?)에 이르더라구요.
그 선임분의 가르침(?)을 받아 저도 인턴이나 신입을 받을 땐 몇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신입들이 필기를 안합니다.(모릅니다) 누가 부르면 무조건 펜과 종이를 들고오라고 처음에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1달 동안 모르는 건 무조건 물어보라고 합니다. 대신 두번 물어보면 안된다 라고 하고 한달 뒤엔 안알려줄거라고 합니다. 이 기간만이 너에게 주어진 질문충의 시간이라고 무엇이든 지금 물어보라, 이때 아니면 안알려줄거라고 협박하면 쫄려서라도 이것저것 보고 학습하더라구요. (두번 물어봐도, 한달뒤에도 대답해주긴 합니다...쭈굴)
>질문은 한 줄로, 메일로 하라고 합니다. 본인이 뭘 궁금해하는지 조차 정리가 안되는 친구들이 있는데요, 질문을 메일로 쓰다보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마냥 본인의 무지를 본인 스스로가 깨닫거나(이딴건 안물어봐도 되는 거였구나...) 습관성 질문몬 들의 마구잡이식 질문 공습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내가 후임에게 요청 할 업무가 있을 땐, 메일로 쓰고 + 불러서 다시한 번 더 구두로 설명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 된 5W 1H를 명기해줍니다. "내일까지 000관련 정보 취합 부탁" 보다는 "내일 타 부서와 클라이언트 미팅 전 러프하게 000관련 회의를 진행 할 예정이고, 실무자만 참석 예정이니 워드 1장으로 간략하게 요약된 문서면 충분하다. 000관련 내용은 그 간 내 메일을 참고하라 or 첨부된 문서를 확인하라." 등. 예시를 첨부해주면 그대는 에인줼
>칭찬해줍니다. 인간의 종류를 크게 2가지로 나누면, 1)쪼으면 자존심 상해하면서 기를 쓰고 더 잘해내려는 악바리형 인간 (때리면 때릴 수록 강해지는 멘탈) 2)쪼으면 지하3700M까지 자존감이 바닥나서 말도 안되는 실수하는 쿠쿠다스형 인간 (멘탈이 한번 부서지면 거의 회복 불가)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1이든 2이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그거 뭐 돈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해줍시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려고 하는게 인간이니까요.
얘가 너무 일을 못한다싶을 땐, 본인을 한번 돌아보세요. 내가 내 일 할 시간도 없는데 얘까지 가르쳐가면서 일해야해? 라는 짧은 생각은 접어두시고, 내가 아는 모든 걸 빨리 가르쳐서 내 일을 덜어가게 만드세요. 본인이 신입이였을 땐 이 정돈 아니였다고 생각이 드시죠? 네. 맞아요. 본인과 그 후임은 다른 DNA를 가진 개체니까요. 다른게 확실합니다. 괜한 텃세와 선배부심으로 시간+감정낭비 마시고 현명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일못을 두둔하고자 쓴 글은 아니니 오해마시길 바래요:)
-퇴사한지 1년 6개월이 넘은 지나가는 백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