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라면 Apr 17. 2019

잊지 않을게

미안해

 잘 지내니? 얘들아. 그날은 내가 나 사는 게 더 중요해서 너네 걱정도 안 하고 오전 내내 리포트를 썼었어... 이른 아침엔 아무 상황도 모르고 너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 혹시라도 회사일에 영향이 끼칠까 마음속으로 걱정한 것도 사실이야. 정말 미안해. 매일 눈으로는 뉴스로 지켜보면서 막상 팽목항에도 가보지고 않았고, 광화문을 유턴하는 7011 버스를 타고 퇴근하면서도 한 번도 내리지 않았었어... 정말 미안해.

 어떤 날은 미팅이 끝나고 올림픽대로를 타고 회사에 복귀하는데 하늘이 말도 안 되게 맑은 거야. 팽목항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작업이 어렵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때 생각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나... 많이 미안하고... 미안했어... 그때, 너희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못해주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지구 반대편 파라과이 버스에서는 버스 앞에 아주 큰 노란 리본이 있었어. 너희 생각이 났어. 또 아르헨티나의 민박집 사장님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노란 리본을 여행자들에게 열쇠고리로 나눠주시기도 하셨고. 지구 건너편에서도 너희를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줘. 또 이 리본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먼저 말을 걸어와준 경우도 있었어.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매일매일 너희를 생각하진 못하겠지만 잊지 않고 너희를 생각할게. 너희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나갈게.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슬프지 말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잘 있어야 해! 나도 너희한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되는 삶, 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