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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면 Oct 01. 2018

불안에 대하여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Perth, Australia


 불안했다. 매일 마주하는 새로운 것에 신나 가끔 까먹긴 했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안했다. 가끔 꿈속에서도 불안을 마주했다. 한국에 돌아가 다시 일을 구하지 못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심지어는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불안을 마주할 때면 너무도 싫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지금 '불안'이 웬 말이냐. 처음에는 애써 부정해보려 마인드 컨트롤을 시도하기도 했다. "괜찮다- 괜찮다. 불안한 게 아니야"하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 순간순간 찾아오는 불안은 내가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공백에 대한 불안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 돌아보면 난 늘 할 “일”이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스케줄러를 빼곡하게 채운 To do list가 늘 있었다.




 하루는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통화 중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생각 속에 있던 불안이 결국 밖으로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친구야. 나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너무 불안해. 무섭고’ 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고 단지 숙제가 없는 삶을 처음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냥 그렇게 무언가를 매일 하면서 살아왔었는데, 그것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외부에 의한 숙제 같은 것들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핵해서 부모님 친구들이 들어봤을 법한 대학을 나와 남들에게 이름 대면 알 수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것.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잘 만들어진 게임의 맵 안에서 한 퀘스트를 깨면 다음 퀘스트가 짠 하고 세팅되어 있었던 삶이었다. 단 한 번도 이 게임에서 로그아웃하고 ‘다른 게임이 있나?’ ‘다른 캐릭터는 있나?’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행복조차 “해야 하는 것” 즉, 숙제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불안이 터져 엉엉 울었던 그 마음 저 구석에는 ‘아- 나는 지금 행복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논다고, 이렇게 시간이 주어지니 나는 어떻게 그 시간을 써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나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 본 적이 없으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불안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찾은 결론은 ‘자기 이해도’를 높이는 일이다. 자기 이해도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싫어하는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만족감이 높은지), 내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해야 할 것을 주기 전에, 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 나의 현재까지 결론. 의학기술의 발달로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살 수도 있는 세대라는데 그 긴긴 시간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고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또 이 불안이라는 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려야 했다. 이 불안이라는 놈은 우루사 피로곰같이 평생 내 몸에 딱 달라붙어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놈이다. 이 불안을 진절머리 나는 피로곰으로 인식할지, 나의 인생에 함께할 메이트로 인식할지는 나의 마인드에 달렸다. 이 놈을 어떻게 잘 구슬리고 달래서 내 인생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불안하다. 근데… 스릴 있다고 해야 하나? (해탈을 한 건지 자기 위로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웃음이 난다. 이 따위로 살면 어떻게 될지 시즌2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저 내가 되는 것. Be myself. 이게 지금의 내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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