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낯선 땅, 아르메니아로 이주하게 된 계기
러시아에서 6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나는 올해 6월,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이후 모스크바에서 피아노 및 러시아어 과외, 외신기사 번역일 등을 하며 바쁜 여름을 보내던 중 '아르메니아 국제 피아노 콩쿠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공지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고, 9월 중순경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제법 규모가 큰 피아노 경연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에 나는 주저없이 참가신청을 했다. 아르메니아는 구소련 15개국 중 하나로, 현재 모스크바에서 직항으로, 또한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대러 제재로 인해 대부분의 직항노선이 사라져 러시아 교민들은 한국을 다녀오는 데에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나의 경우에는 국제대회 참가차 자주 유럽을 방문하곤 하는데, 한 번 갈 때마다 터키, 우즈베키스탄 등 최소 한 곳 이상의 경유지를 거쳐 본래 3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장장 10시간을 넘게 돌아서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직항으로 갈 수 있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등 구소련 국가로 가는 편이 부담이 훨씬 적다.
준비할 시간이 한 달 남짓이었기 때문에 예선과 본선, 결선 독주 프로그램을 준비하려면 거의 하루종일 연습에만 매진해야 했고, 나는 생계수단이었던 과외 아르바이트의 횟수를 줄이면서까지 최대한 연습시간을 확보했다.
그런데 대회를 약 2주 정도 앞두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했다. 대회 측 내부사정으로 인해 본래 9월 15일부터 있을 대회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지게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게 된 것이다. 이미 환불 불가한 아르메니아행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놓았고, 닷새간 머무를 숙소도 예약했는데… 한참동안 컴퓨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대로 티켓값을 그냥 버리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기왕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하고 올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지만 그동안 열심히 연습하며 준비해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고, 속상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때,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회는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가만히 앉아있지만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대회 개최 예정 장소였던 아람 하차투리안 박물관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아르메니아 청중들을 위해 피아노 독주회를 열고 싶습니다. 박물관 내 연주홀 대관을 허락해 주십시오.
준비한 독주 프로그램과 저의 이력서를 함께 첨부드립니다.'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본래 대회 예정일이었던 15일에 마침 홀 일정이 비어있으니 독주회를 열어도 좋다는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 라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독주회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9월 14일, 독주회 전날이 되었고 나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오전 비행기를 타고 약 3시간 여를 날아 예레반에 도착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굉장히 정이 많고 친절해서 언제나 손님을 잘 대접한다고 하던데… 나는 비행기에서부터 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아르메니아인 아주머니께서는 내게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부으셨고, 내가 머무르는 숙소의 주소를 보여드리자 자신의 집과 가깝다면서 택시를 함께 타고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택시비를 직접 내주시며 '무슨 일이 있으면 내 번호로 연락해라, 도와주겠다'고까지 하셔서, 처음만난 분에게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도 되는건지,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호텔에 잘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로비에서 와이파이를 켜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나는 또 한 번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독주회 장소인 아람 하차투리안 박물관 측에서 '내일 예정이었던 피아노 연주회가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라는 공지를 올린 것이다. 너무 놀라 이메일함에 들어가보니, 담당자에게서 온 메일이 있었다.
'어제인 14일 새벽,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무력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오늘부터 2주간 아르메니아 전역의 모든 대중행사,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고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분쟁을 겪고있다. 2020년에 크게 전쟁을 치른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 내가 아르메니아에 도착한 날인 14일 새벽, 2년만에 두 나라가 급작스럽게 다시 충돌하여 양국 군인 10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메일과 뉴스들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면서, 연주회를 하지 못하게 되어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보다는, 현재 아르메니아인들이 겪고 있을 슬픔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이미 아르메니아 땅에 도착했으니, 이 닷새간을 코카서스 지역의 전반적 상황에 대해 공부하는 계기로, 또한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역사를 지나며 겪어온 슬픔에 깊이 공감하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박물관 측에서 개인적으로 홀에서 혼자 연주하고 영상을 촬영하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었다. 연주복을 차려입고 카메라를 세팅한 뒤 텅 빈 홀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이 지역에 평화를 달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홀로 연주를 마치고 나와 호텔로 돌아왔는데, 예레반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란 출신 친구 모함마드에게서 연락이 왔다(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아르메니아에서 공부하는 이란 유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는 '친구들을 불러모을테니, 이들을 위해 학교 연습실에서 잠깐 연주를 해줄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바로 승낙했다. 비록 내가 원했던 공식적인 연주회는 아니었으나, 본질을 들여다본다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한 사람이라도 나의 연주를 듣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연주기회도 생겼겠다, 아르메니아 친구인 아이다 또한 초대하기로 했다. 그녀와는 인터넷으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같은 예술인으로서 우리는 더욱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아이다는 내 피아노 독주회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했었는데, 저녁에 음악원으로 오라고 초대를 하니 너무나 기뻐하며 일이 끝나는 대로 달려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예레반 국립음악원으로 향했고,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연습실에서 나는 이란 출신 유학생들, 그리고 아이다 앞에서 기쁜 마음으로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고 한 친구는 감동을 받았다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혼자 연습하는 과정도 즐겁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공유할 때, 기쁨은 배가 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마쳤겠다, 남은 일정동안은 이곳저곳 다녀보기로 했다. 마침 주말이라 아이다와 그녀의 오빠인 아르준 또한 시간이 난다고 하여, 내게 예레반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틀 동안은 우리 모두 말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유명한 관광명소인 공화국 광장부터, 수많은 유서깊은 교회들, 아르메니아 역사박물관, 마르티로스 사리얀 미술관,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박물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들 중 하나는 바로 예레반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콘트(Kond)였다.
모스크바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아이다 가족의 초대를 받아 그녀가 살고있는 예레반 근교지역 아르마비르(Armavir)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아르메니아의 문화를 다시금 체험할 수 있었다. 친구 아이다의 부모님과 막내여동생 에바, 삼촌과 숙모, 8살인 사촌여동생 아네치까, 그리고 작년에 태어난 사촌 막내동생 아레빅(아르메니아어로 '태양'이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이 아기가 환하게 웃을 때면 정말 태양이 반짝 떠오르는 것 같았다)까지… 모두 나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 함께 오전에는 10세기 경에 지어졌던 다쉬타뎀 요새를 방문하고 저녁에는 아이다의 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르메니아식 전통요리인 돌마 (채소나 해산물 등의 속에 쌀이나 다진 고기, 양파, 허브 등을 채워 만드는 음식)의 맛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다의 사촌여동생인 귀여운 소녀 아네치까는 '살면서 한국인을 처음 만나본다'며 특히나 나를 신기해했다. 다쉬타뎀 요새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네치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다음에 아르메니아에 또 오게 되면,
그때는 꼭 오랫동안 머물러야해! 3년… 아니, 평생! 알겠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르메니아처럼 아름답고 정이 가는 나라를 처음 경험해 보았기에, 나 또한 “그럼, 당연하지. 다음엔 좀 더 오래 있을게” 라고 약속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이 말이 곧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르메니아를 떠나 모스크바로 돌아온 지 이틀만인 9월 21일, 러시아 전역에 예비군 부분 동원령이 선포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도피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러시아에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다른나라에 피신해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르메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다시 한 번 끊었다. 아르메니아는 한국인이 무비자로 장기간(180일) 머물 수 있으면서, 러시아와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지내기에는 매우 적절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나의 소중한 친구 아이다와 그녀의 가족들이 있기에, 걱정보다는 오히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지금, 아르메니아로 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6년동안 공부하고 생활하며 정들었던 러시아를 갑작스럽게 떠난다는 것,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낯선 곳으로 가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많은 아르메니아인 친구들을 사귀었고, 또 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성심성의껏 도와주었기 때문에 아무 탈 없이,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아르메니아어도 배우고 있으며, 예레반 국립음악원에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 카리네 오하니얀 교수님께 사사받을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어 매주 피아노 레슨을 받고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그토록 원했던 피아노 독주회 또한 아람 하차투리안 박물관에서 다시 열 수 있게되어, 아르메니아 청중분들 앞에서 2시간 가량 연주를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어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며 학업을 이어나가게 될 지, 휴전 합의를 맺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또 한 번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하지 않으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늘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가 내게 안겨준 깨달음과 선물들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땅을 위해,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위해, 나 또한 할 수 있는 일들로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