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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Sep 15. 2024

6. 미안해… (2)

날씨는 흐렸고, 마음은 불편했다.


“여기 병원인데요. 어머니께서 안정이 안 되셔서 연락드렸어요. 며느님께 연락드렸는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 따님께 연락드려요. 지금 한번 병원으로 와 보셨으면 합니다.”


엄마는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아주 간혹 잘 지내셨고, 거의 매일 같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올케언니는 대표전화이자 긴급통화 1순위로 항상 병원의 연락을 받았고, 그 후 꼭 민정이에게 소식을 전해줬다. 보고하듯, 병원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당신 엄마니까, 직접 통화하는 게 어때요. 내가 꼭 매번 이래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민정이는 어쩔 수 없이 짐작했지만,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혼자서 다짐했다.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늘 이런 과정이 계속될 거라고.


그러나 오늘 올케언니는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민정이는 자신도 의도가 없지 않았던 것처럼 올케언니도 있었을 거라 확신했다.


민정이는 가기 싫었다. 더 이상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로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딸이었고, 보호자였기에 민정이는 병원으로 가야 했다. 가라앉은 공기 속, 그곳에 가 있을 자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갑갑해졌다.


세 달 전, 엄마의 잦은 화와 다른 모두를 향한 의심에 오빠와 올케언니는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었다. 당연히 순순히 병원으로 향하지는 않으실 것 같아, 다른 건강검진이라는 이유를 둘러대며 엄마를 검사받게 했다고 그 당시의 곤혹스러움을 전해줬다.


민정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에게 엄마의 모습은 늘 그랬기에 딱히 걱정할 만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민정이가 생각하기에 아직 엄마는 젊었다. 치매라기보다는 그냥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고약해진 거였다. 그 이유가 맞을 거였다.


치매로 진단받은 엄마는 점점 더 심하게 주위를 괴롭혔고, 자주 집에 오는 길을 잃어버렸으며, 낮과 밤도 잊어 집안의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오빠와 올케언니는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겠다고 선포했다. 민정이는 엄마의 증상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알았다고, 고생 많았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자신도 신경 썼어야 될 일을 대신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엄마랑 관련된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매번 확인시키고 있었기에, 민정이는 절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병원에 들어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그때, 잘 적응하실지 걱정이라는 말에 살짝 경쾌함이 묻어나는 올케언니의 목소리를 찾아낸 민정이는 고생 많았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좋을까? 좀 더...’


모셔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민정이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시누이가 맞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감당 못할 엄마였으니까. 그러나 민정이도 어쩔 수 없는 그냥 사람이었던 거였다.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


엄마를 보러 처음으로 병원에 갔던 날, 생각보다 적응을 잘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민정이는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지금껏 주위에는 화통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통했었다. 그 성격은 그곳에서도 여전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없자 엄마는 매섭게 민정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있어?”


민정이는 그 눈빛이 싫었다. 매번 민정이를 닦달할 때 보던 눈빛이었기에, 지금의 엄마 상태를 생각하면 좋은 이유를 대며 엄마를 달래야 했지만, 민정이는 그 눈빛에 굳어버렸다. 다른 누군가가 있었으면 잘 지나갔을 그 순간이 민정이는 괴로웠다.


“말해봐. 나를 왜 여기 있게 하는지.”


민정이는 멍하게 엄마만 바라보았다. 그 순간 엄마와 민정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간호사 선생님이 곁으로 오며 말했다.


“명자 엄마, 누구예요?”


웃으며 살갑게 말을 건네는 간호사 선생님이 오자, 엄마는 웃음을 띠며 과할 만큼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딸. 똑똑하지, 직장도 좋지.”


좀 전의 그 날카로운 눈빛은 사라졌고,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엄마가 민정이 앞에 있었다.


“아, 능력 있다는 그 딸?”


엄마는 늘 그랬다. 누군가에게 자신도 아쉽지 않게 잘살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결국에는 민정이를 이용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끝나면, 민정이는 다시 엄마에게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딸이 되었다.


민석이와 올케언니는 엄마의 요양병원 선택을 위해 민정이의 의견을 물었었다. 민재도 있었지만, 민재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늘 경제적인 책임의 절반이상이 민정이의 몫이었다. 능력 있는 민정이에게만 적용되는 이상한 계산법은 그렇게 당연한 듯 자리 잡혀 있었다.


민정이는 잘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엄마가 있기 편한 곳에 모시자고 했다. 올케언니는 크게 상관없는 듯했고, 이래저래 가격을 맞춰보는 것 같았다.


‘내가 정민이 엄마 몰래 너한테 병원비를 줄 테니까, 시설 좋은 곳에 모시자고 권해주지 않을래?’


민석이는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셔야 되는 상황을 받아들였지만, 그럼에도 그 선택이 만든 마음의 가책에 민정이에게 연락을 남겼다.


민석이의 사정을 알기에, 그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민정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다.


평생이 병약한 오빠였고, 그런 오빠와 함께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올케언니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얼마 안 되는 집을 정리하고 오빠네로 들어갔다. 오빠와 올케언니 사이에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 굳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깐깐함으로는 어디서도 밀리지 않을 엄마였지만, 다행히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진 않았다. 오빠를 끔찍이 아꼈지만, 오빠의 약점에  며느리를 정말 딸처럼 대했다. 아니, 민정이는 느껴보진 못한, 사회생활을 해야 했기에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그런 딸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일하는 며느리였기에 자신이 집안 살림을 했고, 며느리랑 불화가 생기기 전에 먼저 한 발을 뒤로 물렀으며, 며느리가 일을 그만둘까 봐 전전긍긍했기에 며느리의 기분을 맞추었던 엄마였다.


‘민정아, 미안하다. 어떻게든 나도 노력해 볼게.’


민석이의 서글픔이 전해져, 민정이는 굳이 그럴 필요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민정이는 병원 입구에서 다시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괜히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찮은 엄마를 병원에 보낸 나쁜 딸이 된 것 같아서 생각보다 괴로웠다.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엄마의 병실로 갔다.


병실 입구에서 만난 간호사가 민정이를 세우고 말을 건넸다.


“어머니께서 밤에 한숨도 안 주무시고, 주위 분들을 계속 깨우시고, 침대에서 자꾸 내려오셔서..”


그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조심스럽다는 듯이.


“지난번에 아드님이랑 며느님께 말씀드렸었거든요. 동의도 받았고요.”


민정이는 간호사 선생님을 계속 보고 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띤, 그러니까 어머니의 성격이 상당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안정제를 놓아드렸어요. 약 때문에 잠잠해지셨지만, 대화가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을 거예요.”


민정이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무얼 물어야 될지 알지 못했다. 고생 많으시다고,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며 엄마에게 갔다.


엄마는 생전처음 보는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주무시는 거 같진 않은데, 완전히 깨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민정이는 당황스러워서 거의 처음으로 스스로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엄마는 눈을 떠서 민정이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소리에 반응은 있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엄마는 너무 낯설었다.


민정이는 순간 울컥했다. ‘그러게 잘 좀 있지’라는 생각과 이상한 미안함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엄마 옆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끔 엄마를 불렀다. 무언가를 확인해야 되는 거처럼.. 그런 민정이에게 옆에 계시던 다른 환자분이 말했다.


“걱정 마요. 엄마 괜찮아질 거야. 여기도 적응이 필요해.”


민정이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굳어 있는 얼굴에서 조금의 여유를 만들어냈다.


엄마보다 더 연세가 있으신 것 같았지만, 엄마와 달리 몸이 불편해 들어오신 그분은 세상을 다 초월한 듯한 눈빛으로 민정이와 엄마를 바라보고 계셨다.


민정이는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어 고개만 살짝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엄마가 딸 자랑을 얼마나 하던지.”


엄마는 또 그랬나 보다. 뭔가 모르게 자신이 부족했던지, 아님 자신을 포장하고 싶었던지.


민정이는 그냥 살짝 웃으며 괜히 엄마의 물건들을 만지며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먼저 안다는 건 가끔 불편했다. 민정이는 엄마 덕분에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항상 견뎌내기 힘들었다.


엄마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엄마가 주무실 수 있게 된 거 같았다. 민정이는 그렇게 잠시 더 엄마를 보고 있다가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열려 있는 다른 병실 안이 보였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안 좋고, 기억을 잃고 있는 그곳 사람들의 시간이 서러웠다.  인생의 종착을 향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을 멈춰야 했다. 괜히 별일 아닌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게 되는 것 같았다. 다들 나이를 먹으니까 몸도 그렇고, 기억도 나이를 먹으니까 당연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려고.. 민정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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