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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Sep 20. 2024

7. 미안해… (3)

*

“민정, 오늘 피곤해 보인다.”


동갑인 현주가 민정이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똑같이 일하는 엄마로서, 그럼에도 자신은 아이 하나인 엄마였기에, 민정이의 피곤함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민정이는 늘 거뜬한 모습을 보였고, 자신의 지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했기에, 오늘은 숨기지 못한 피곤함을 먼저 물었다. 한계가 온 듯했다.


“아, 우리 둘째가 새벽에 갑자기 토해서, 씻기고 치우고..”


“병원에 안 가봐도 되는 거야?”


“아침에는 괜찮더라고.. 유치원 간다기에 보냈지.”


현주의 말에 정말 병원을 갔어야 되는 건 아니었는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는 밥 잘 먹고, 웃으며 유치원으로 향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민정이는 현주의 말에 떠오른 아이에 대한 걱정과 별일 아닐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안심으로 오고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정이는 아이가 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토하고 설사를 한다는 선생님의 연락에 자신이 아침에 한 결정을 후회하며 아이에게 갔다. 엄마 없이 아팠을 아이 생각에 가는 내도록 부족한 엄마인 자신을 탓했다.


병원에서는 장염이라며 아이의 증상을 지켜보기 위해  입원을 권유했고, 진찰과 입원수속으로 정신없이 오가던 민정이는 병실에 아이를 누이고 한참 만에야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축 늘어진 아이를 보자 더 일찍 신경 못써준 게 미안해 눈물이 났다. 잠든 아이는 잠결에도 엄마를 찾았고, 다시 토닥이며 아이를 재웠다.


“첫째도 키워봤으면서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을까?”


민정이가 자책을 하자 남편은 민정이를 위로했고, 민정이를 조금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자신이 병원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민정이는 엄마로서 해준 게 없다는 생각에 남편의 배려를 거절하고 아픈 아이의 곁을 지켰다.


둘째가 혼자서 받는 사랑은 거의 처음이었기에 아프지만 아이의 기분은 어느 때보다도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늘 바빴던 엄마랑 하루종일 있다고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 민정이는 지금껏 고민조차 안 해본,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괜찮아진 줄 알았던 아이는 밤새 열이 올랐고, 깊이 잠들지 못해 자주 칭얼거렸다. 민정이는 아이를 안고 토닥여주었고, 자신도 버텨내지 못한 피곤함에 꾸벅꾸벅 졸았다. 걷잡을 수 없는 피곤함은 무게를 더했고 민정이는 지쳐 아이의 옆에 쓰러지듯 누웠다. 아이가 제발 아프지 않길, 그래서 푹 자길 바라며 민정이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직은 새벽이었다. 아이의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들렸고, 밤보다 괜찮아진 것 같았다. 아이의 이마를 한번 짚었다가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틀새 반쪽이 된 얼굴에 너무도 미안해졌다. 자신이 뭘 잘못한 것 같아, 더 잘 챙기지 못한 것 같아 혼자서 아이에게 사과했다.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아이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웃음에 민정이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민정이는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에 당황했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눈물에 민정이는 소리 없이 들썩이며 한참을 울었다. 다행이었지만, 다행이었기에 더 울고 싶었다.


**

나무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조용한 벤치에 앉아 지금의 날씨를 감탄했다. 어쩌면 천국일 수 있을 이곳이 다시 보였다.


곳곳에 병원복을 입은 사람과 아닌 사람, 그리고 간호사와 도움을 주는 사람. 병원이었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요양병원인 것 같았다. 대부분이 나이가 든 사람들이었고, 힘없이 앉아 있거나 삶에 대한 집착을 놓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표정의 얼굴을 한 이들도 있었다. 다시 아이로 돌아간 듯한 모습에 나무는 그들의 얼굴을 살짝 보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무인 사람도 그랬다. ‘하늘이 이쁘다. 꽃도 이쁘다.’ 그리고는 혼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또다시 생각한다. ‘지금 저 사람도 이쁘다.’


“엄마, 오늘은 여기 계시네요.”


피곤한 건지, 슬픈 건지, 아님 아무 감정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빛을 가진 젊은 여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지금은 나무인, 이 사람의 딸인 게 분명했다.


민정이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엄마임을 깨달았다. 엄마의 인생에서 더 이상 나쁜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 기억을 잃는 엄마에게 서운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안 좋은 기억을 남기지 않게 된 엄마가 되었기에 안심이 되면서도, 그럼에도 딸인 자신을 잊는 게 섭섭했다.


그랬다. 엄마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순간 다행이면서 이상하게 섭섭했다. 그러나 자신을 기억 못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서로가 가진 좋은 기억이 없으니까, 그렇게 잊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섭섭하게 느끼는 게 이상할 만큼, 떠올릴 추억이 없는 민정이와 엄마의 관계였다.


민정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나를 다 잊어 달라고..


민정이는 엄마를 한참 바라봤다. 엄마도 민정이의 눈빛에 살짝 어색하게 웃었고,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기에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시선을 돌렸다.


민정이는 이해하기 싫었다. 싫었는데.. 민정이는 엄마의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그 눈빛에, 정신없이 지나온 자신의 며칠간이 떠오르며, 예전의, 그때의 엄마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엄마의 끝도 없었을 걱정들과 나아질 줄 모르는 삶의 피곤함과 그 오랜 시간을 엄마에게 한 뼘도 허용해주지 않았던 여유가.. 엄마 인생의 모든 것이 민정이의 목에 걸려 뜨거워지고 있었다.


민정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 한쪽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엄마는 민정이의 얼굴로, 그 눈물로 손을 가져다 대려 했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은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었다. 누군가 우는 모습에 달래주려는 표정이었다가 갑자기 너무도 당황하는 눈빛이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리고 기억한 듯.

엄마의 그 눈빛에 민정이는 꼭꼭 숨기고 싶었던 그때를 떠올리고 말았다.


“독한 계집애. 내가 그렇게 뭐라고 해도 대들지도 않고 한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만 똑 흘린다고. 더 얄미워”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던 민정이는 그때 처음 알았다. 자신은 한쪽만 운다는걸. 그래서 더 참아야 했다. 한쪽도 안 울게 그렇게 꼭 참아야 했다.


민정이는 다시 떠오른 그때의 기억에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또 보이고 말았다. 이렇게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깨닫고 말았다.


‘나 혼자 방심했구나...’


민정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별일 아닌 것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예상도 못한 사이에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미안해...”


나무는 이 사람의 미안해하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떠오른 기억에, 상처를 준 그 시간들이 너무도 엄청났기에 엄두를 못 내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대신 말해주었다. 미안하다고..


민정이는 엄마의 그 말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민정이의 머리보다 마음은, 그렇게 더 빨리 위로를 받았버렸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에, 민정이는 자신의 모든 기억들 속에서 지독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가 자꾸만 용서가 되고 있었다. 민정이는 이게 더 싫었다. 미웠다. 왜 지금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또다시 민정이의 마음을 몰랐던 것처럼, 상처를 준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다 잊을 거면서..


민정이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며 눈물이 멈춰주길 기다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날아가는 새를 신기한 듯 보며 멍한 눈빛으로 콧노래를 다시 부르고 있었다. 늦었다. 이미 엄마는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돌아가 민정이의 엄마라는 것을 또다시 잊었다. 엄마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민정이를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누구예요? 울었어요?”


민정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나무는 이 사람의 한숨을 느낀 것 같았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하면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한숨에 나무는 이 사람도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무는 돌아가던 딸이 마음에 쓰여 한번만 더 볼 수 있길 바랐다. 그럼 그때는 제대로 사과를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 대신에 꼭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번 안아서 토닥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무는 또다시 어딘가로 가는 자신을 느낄 뿐이었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그 순간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

민정이는 토요일의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새가 지저귀고, 먼 곳의 자동차 경적. 민정이는 연속된 알 수 없는 생각의 연결들로 혼자 멍하게 앉아 있었다. 혼자 잘 놀고 있던 둘째 아이가 그런 민정이의 모습을 보고는 민정이에게 다가왔다.


“왜? 너도 놀이터에 나가고 싶어?”


남편이 놀이터에 나가고 싶어 하는 막내와 아빠에게 읽었던 책을 말해주고 싶은 첫째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는 모습에, 자신은 집에 있겠다고 말한 둘째였다. 아직 제대로 회복 못한 컨디션에 나가고 싶다면 말릴 생각이었지만, 엄마랑 있길 더 원했던 둘째였다.


민정이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한참을 민정이 앞에서 민정이를 빤히 보고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는 살짝 웃으며 아이는 민정이를 꼬옥 안았다.


“왜 그래?”


민정이는 아이의 뜬금없는 행동에 웃으며 물었다. 아이가 민정이를 더 꽉 안았다. 민정이도 다시 묻는 대신 아이를 더 안았다. 아이에게서 달달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민정이의 가슴 한쪽을 쨍하며 깨트렸다. 이 순간이, 이 모습이 너무 행복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이 장면과 겹쳐지며 북받쳤다. 그러니까 민정이는.. 자신만 행복한 게 마음에 걸렸다.


민정이는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그때부터, 꼭 행복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바라지 않아도 자신은 꼭 행복할 거라고, 보란 듯이 행복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결국 민정이는 그 행복을 완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민정이의 울음을 느낀 아이는 민정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왜 우냐고 묻지 않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민정이는 아이의 손길에 다시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민정이가 늘 자신에게 해주듯 민정이의 어깨를 작은 손으로 토닥여주었다. 민정이는 자신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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