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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15. 2021

우리는 항상 고민한다.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왜 살아야 하지, 잘 살았다는 기준은 뭘까, 못난 삶의 기준은 또 뭐고.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하는 걸 종종 듣곤 한다. ‘그냥 사는 거야’ …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게 보통인 줄 알았어’ 라는 말들. ‘왜, 그게 보통이 될 수 있었어요?’라고 물어도, 다시 물어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고.


살아지는 게 삶일까,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일까. 어느 쪽도 정답이라고는 말 못 할 이야기다. 꼭 그렇지만 벤다이어그램 같은 존재가 삶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것만 가지곤 살 수는 없으니까 저것도 필요하고. 다른 것도 필요한데 꼭 넣고 보면 공통분모 같은 게 필요하다는 걸 아는 것처럼. 벤다이어그램은 삶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웃을까.


또 생각난 게 있다. 어느 프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인터넷에 떠돌던 명언 같은 말이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인터뷰를 한 내용이었다. 자기는 일직선으로 잘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철도 길처럼 구불구불한 삶을 살았다고.

책에서도 읽어보면 삶은 연장선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다. 촘촘한 점이 이루어져서 선으로 보이는 것뿐이라고.

그럼 있지. 삶을 모양처럼 표현해도 괜찮을까. 이런 것들. 내 삶은 꼬불꼬불해, 구불구불해, 난 울렁거리는 삶이야. 같은 걸로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쭉 뻗어나가는 것들을 잘 산다고 생각할까. 바꿔 말하면 ‘난 직선적인 삶을 살았어’했을 때 표현으로 따지면 어라? 할 텐데. 너무 억지일까,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걸까. 사실 이상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도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내가 위안 받고 싶어서였다. 왜 사람들이 ‘저 사람은 모났어’라고 할 때 꼭 날카로운 고슴도치 같거나, 다듬어지지 않는 보석 같은 걸로 비유하곤 하는데. 직선이 아니면, 날카롭지 않으면 모날 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꼭 안심 되는 기분을 설명하면 이해가 될까. ‘난 좀 촘촘하게 구불구불한 선이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삶을 살았어요. 가끔은 직선도 있었는데 끝이 뭉툭해져서 더는 직선이진 않아요’라고 표현하면 모나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벤다이어그램 같은 좀 구불구불하게 가는 삶, 그게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지는 건, 가끔씩 때때로 오는 무기력 같은 삶에 망망대해에 잠시 실종됐거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여야만 하는 다리가 되어버렸을 때 써도 충분하니까. 그때가 오면, 좀 덜 구불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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