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의 눈총을 뜨겁게 받고 있는 올해의 가을은, 작년에 비해서 옷을 갈아입는 속도가 비교적 늦는 것 같다. 마치 만원 지하철에 어설프게 끼여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인 것 같아서 가을의 안부를 묻기란 쉽지 않은 요즘이다.
더운 숨 하나도 몰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한 달이었다. 곧게 뻗은 직선의 말에는 날카로움 보다는 답답함이 끼워져 있음을 느낄 때마다 나의 어깨는 좁아졌다. 확신이 없는 자신감, 실수와 실패를 피하기 위해 다른 출구를 찾아 헤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과소비를 하게 되었다. 이십대에 부딪혔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이 커다랗게 다가온다는 말이 딱 맞다. 애매함을 시험하지 않은 탓에 도망치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누구나 가슴속에 품는다는 복권 종이 하나에 감정을 담아내는 날도 잦아졌다. 그래, 차라리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일을 가르쳐 주는 그녀가 그랬다.
애매함을 시험해보지 않으면, 내가 가능성이 있는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몰라요.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 봤다. 이전에도 그랬지.
창피함을 견뎌야 그다음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었는데, 금세 또 까먹었구나.
그래서 애매함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내가 그리 간절히 바라던 정직원이 되지 않아도 좋았다. 그제에는 조금 울었다. 남들은 좀 더 쉽게 습득하는 것을, 쉽게 가는 길을, 나는 유난히도 어렵게 이해하고, 에둘러 가게 된다는 것에 한탄하며. 그런데, 그게 나인 것을 어찌하리. 나이에 비해 쌓이지 않은 숙련도가 갑자기 늘 수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대신 애매함과 창피함을 견디며 끝까지 해보는 선택을 했다.
그래, 사회의 나는 그런 발걸음을 뗐다.
그럼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그건 말이지.
나의 감정이 서운해지지 않기 위하여 모나게 말하는 습관이 조금 베여버린 것 같은 요즘이다. 그래서 한번 더 숨을 삼키고, 귀찮음을 떼어내 버리려 한다. 익숙함에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그런 와중에도 넌 참 말을 예쁘게 한다고 해주는 이들이 있다. 부끄러움이 몰려와서 한 걸음 물러서며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일종의 내숭이라는 거야. 나는 사랑받기 위해 일종의 전략을 피우는 거야.
투명해지기보다는 불투명 해지기로 했는데, 어느새 또 은은한 물방울이 되어버린 것 같아 고민도 든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른의 여유를 가진 여러 친구를 바라보면서 부러움 느끼기도,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껴 무엇으로 정의 내릴지 생각에 잠긴다.
얕은 물가에 발목을 막 담근 것 같은 관계도,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한참 더 멀어져 버린 것 같은 관계도, 이제는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은 그 모든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물이고, 모래고, 바람 같다. 그래서 한참 더 조심스러워서 웃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졌다.
그래서 잊을만하면 다짐하는 것은 아낌없이 사랑할 것, 의심을 품지 말 것, 그리고 영원을 약속을 요구하지 말 것.
그러면 언젠가 어느 관계 하나쯤은 마주 보고 웃을 수 있겠지.
빠르게 어둠이 내리는 미적지근한 계절, 뼈 틈이 시리기 전에 옷을 많이 사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