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를 당했다. 처음 면접을 봤었던 회의실로 들어가, 마주 봤던 자리에 앉아서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타깝게도 같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통보였다.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던 탓에 조금 눈물을 흘리고, 알겠다는 답변을 하곤 5분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결과는 좀 쓰리지만, 나에게는 좀 버거운 일이기도 했다. 차라리 잘 됐다는 마음으로 일어나 짐을 챙기고 회사를 나왔다. 심장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이명이 사라진 지 고작 이틀이 되던 날이었지만 슬픔을 조금 달래고 싶어서 술을 마시러 갔다.
술 한잔에 벌써 툭 하고 눈물이 흘렀다. 해고가 엄청나게 서러워서 눈물을 흘린 게 아니었다. 지난밤에 당한 모멸감과 떨어지는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바빴던 날들, 지나간 사랑에 내가 이루지 못했던 것들, 새로운 인연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떨어져, 반짝 빛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서러워 눈물 흘리는 것이었다.
한 한 달 전쯤이었다. 그의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할까,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독수리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고, 무리를 지어서도 살 수 있는 개체로 알고 있다. 강해 보이는 것이 꼭 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튼 그가 그랬다. ‘네 쪼대로 살아라’라고.
투박하게 말하는 게 퍽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보여줬던 잠깐의 눈물 섞인 이야기는 왜 이리 인간적이었는지. 그 독수리를 잠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못난 모습 보이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를 마음에 품으면서 무언가 해내기엔 내가 어리숙하고, 어른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내려놓아야 하고, 말라가는 통장에 숨을 쉬게 하려면 뛰어야 한다. 작년처럼 웃으며 2024년도를 마무리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달려봐야 알 것 같다.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2024년의 끝자락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