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첫눈이 왔다며 들뜬 11월의 끝자락의 아침. 어제 저녁 오랜만에 좋아하는 친구랑 가볍게 한 잔 하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입김이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호- 하고 불어보자 새하얗고 몽글거리는 입김이 났다. 그제야 실감했다.
아, 겨울이구나.
웃음이 났다. 나는 몇 년 전만 해도 겨울이 싫었다. 내가 살을 에는 추위에 견디는 병든 나무 같다고 생각해서, 다시 볕을 받아도 새 살은 올라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나무.
이제는 겨울이 좋다, 소복하게 눈이 쌓이는 것도. 단, 징그럽게 다들 수군대는 크리스마스에는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겨울이 불러온 외로움 때문이겠지.
꾸역꾸역, 무력감에 짓눌리기도, 졸음에 짓눌리기도 하면서 힘들게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문득 행복하기도 하다. 통장만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불편할 뿐.
해고를 당하기 직전, 아니 그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사람. 독수리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와 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할 때, 그가 물었다. ‘너는 내가 왜 좋니?’ 나도 아직까지 모르겠다며 웃어넘겼다. 아마, 그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에서야 조금 선명해지는 이유를 적어 보자고 책상에 돌아앉은 게 웃기다. 아니, 그는 싫어하려나?
그와 술 한잔을 한 적 있었다. 처음 본 자리였는데, 내가 흘린 말을 캐치해서 자신의 상처를 먼저 보이며 살짝 눈물 보이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이었다. 아마 나의 마음을 보듬어 주길 기대했던 내가 더 큰 나였더라면, 그보다 먼저 왈칵 눈물 쏟아내며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나보다 더 강해 보이는 사람이 보이는 그 눈물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난 그의 눈물을 함부로 속단하기도, 애틋하게 여기지도, 달래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동일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실은 외려 고되고, 더 강해야 할 수 있고 묵묵해야만 할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에게 네 잎클로버를 건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가올 바람을 막아줄 만큼 단단하질 못해서, 대신 부적처럼 쓰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람은 사랑받길 원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에게 좋으면 당기면 될 일이지, 왜 밀어내냐며 툴툴거렸지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큰 심연도 함께 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단단해야 하고, 뾰족한 가시에도 아파하지 않을 수 있어야겠지. 몇 년 전, 네가 어른스럽다고?라고 코웃음 쳤던 대바늘처럼. 적어도 그를 뛰어넘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난 어쩌면 그를 응원하는 정도로 그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절 인연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욱 가득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눌러 담아 이야기해야지.
당신이라서 좋은 것이라고.
예쁘게 휘는 눈꼬리가 부서지지 않도록 찬란했으면 한다고.
더 예쁜 대답을 찾지 못해 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