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도 찾아오지 않은, 더운 열기가 감싸는 여름의 초입의 어느 새벽에 몸을 일으켰다.
건조한 마음에 숨을 몇 번이나 불어넣으며, 어지러웠던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초랗게 빛나는 봄의 따스함을 머금고 어느 가게에 취업했지만, 다시 등지고 나오게 된 것에 된 것은 꽤나 나도 유감이었다. 그 회사를 정말로 사랑하진 않았지만, 네 일이 내 일이요, 내 일도 네 일이요 하며 모두가 하나로서 일하는 모습에 감동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겪은 작은 불씨의 일로, 또다시 숨이 가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 한참 어지러운 시기에 사직서를 내밀고 나와버린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긴 하지만, 이미 물 잔을 엎질렀기에 그럴 수 없었다. 심장이 고장 나 버려서 저품질의 퍼포먼스를 낼 바에야 없어지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었으니.
그 시간 속에서 굉장히 압박을 받았던 것은 감정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는 억울하다 토로하거나 불합리하다며 날 것의 감정을 표출하고 항의하거나, 욕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는 등을 보아야 했다. 뭐, 성기 사진은 특별한 케이스긴 했다.
아무튼 일상에서도 겪었지만, 불합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적으로 굴거나 필요 이상의 감정적인 행동은 상대에게 얼마나 피곤함을 느끼게 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감정을 죽이기로 했고, 그들이 얼마나 불합리하다고 말하건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NO’를 말했다. 그럼 둘 중 하나였다. 소리 없이 백기를 들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더 떼를 쓰거나. 그래서 다짐했다.
필요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한 관계를 놓았다. 그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더 두었다간 오히려 관계가 망가질 것 같았고 질린 것 같았다. 그래서 매일을 공유하던 일상에서 단절을 택했다. 그와 관련된 관계도 가위로 툭 잘라낸 것처럼 잘라냈다. 서운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더 소중한 쪽을 고른다면 당연히 그가 아니겠나라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매너리즘이었는지 애증이었는지 모르겠다. 별안간 반짝였던 역 앞의 벤치의 무알콜 맥주도, 눈물로 얼룩졌던 오뎅바의 작은 속마음도, 미묘하게 다른 소주의 맛을 알아버린 추억이나, 한 시간이나 걸어서 앉은 벤치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도. 마지막 한 개비만 남겨두고 피워둔 소중한 성냥불 같았고, 성냥개비가 고꾸라진 것뿐이다. 아니, 애증도 매너리즘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력한 애정 앞에 고꾸라진 것 일지도.
그와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일방적인 사랑이다. 그를 떠올리며 생각한 것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려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대로 달아나 죽을 수는 없잖나. 죽지도 못하지만서도.
세 시간을 노래하며 태운 것은 건조하게 바싹 말라버린 마음을 돌려내려 애썼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물기라도 얹으려고.
무력한 애정, 사랑을 입에 달지만 사랑은 없는 사람이 내 곁에 존재한다. 응당 사랑한다면 변화할 수 있는 것들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지독히 닮아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니 알았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술을 마다할 수도 있다고 단언하는데
연인이라면 망설이는 그 생각에. 이 얼마나 무력한 애정인가 하고.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또 마음의 물기를 잔뜩 끼얹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생기겠지 싶다. 무력한 애정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확실한 무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야지.
아침이 밝았다.
이제 단 잠에 빠지고 싶다.
―
P.S : 사진은 주혜에게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