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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22. 2021

그 아이 1화

그는 항상 바쁘다. 말로는 바쁘지 않고 싶다면서 1  제대로 쉬는 꼴을 보지 못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대단한 친구다.     


주말을 그냥 보내는 게 아깝다며 본업을 하고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상한 친구.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냥 놀면서 돈 버는데 왜 힘드냐 한다.        

나는  하는 , 쉬는 , 약속 있는 날로  개의 날이 나뉘어서 있다그는  하는 , 쉬는데 일하는 , 쉬는데 힘들지 않은 날로 살아간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내가 술을 처음 제대로 배웠을 때 그에게 조금씩 배웠다.

처음엔 소주 3잔, 그다음은 6잔, 그다음은 1병 반. 그렇게, 차근차근 늘어날 동안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똑같은 술집을 반년 내내 같이 가줘야 했고, 똑같은 메뉴 꼬치와 우동을 먹어줬다. 양갈비를 먹어보지 않았다 했더니 양꼬치와 양갈비를 사주고도 고량주를 경험시켜 줬다. 고량주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잔만 먹고는 그에게 홀랑 넘겼다.


나는 고량주가 싫다.


그리곤 다음번엔 대선소주도 알려줬다. 그러곤 내게 말했다.

         

그거 알아? 대선소주랑 참이슬이랑 맛이 달라.      

    

그는 술이 늘어갈 때 참이슬이랑 처음처럼 맛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줬다. 거짓말 같지는 않아서 참이슬과 대선 소주를 같이 먹어봤다.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더니 다시 먹어보라며 대선소주를 먼저 내밀고 참이슬을 준다.          


대선 소주가 참이슬 보다 좀 더 달고 목 넘김이 좋았다.  


난 또 그렇게 술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고도, 또 그러고도, 토끼 소주니, 위스키, 보드카 등도 조금씩 먹어봤다. 요즘은 술을 못 먹으니 맛있는 무알콜 맥주를 주곤 한다. 그는 말한다.          


난 세상에 나온 술을 다 먹어볼 때까지 안 죽을 거야.          


난 그가 저 말할 때마다 정말 ‘미친 게 아닐까?’라고 생각이 든다. 간이 네 개가 있는 것처럼 마시고 오는 걸 보면 괴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진짜 외계인 같다. 나사 번호는 아는데, 쟤를 보내면 해부당할까 봐 연락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는 요리사라서 미각이  예민하다.

시선도 예민하다. 같이 식당에 가면 물끄러미 나오는 음식이나 소스를 바라보고 있다.   

   

뭐 하고 있어?라고 물으면.     


여러 가지를 느껴보는 거야. 라며 이상한 조합으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주방을 바라보곤 한다.

직업병을 가져서는 이곳저곳 음식을 탐방하고 가장 맛있는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부러워서 리스트를 달라고 하면 거저 얻는 못된 버릇을 톡톡히 고쳐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리스트를 탐내지 않는 대신 데려다주길 기다린다.       


그는 나랑 많이 다르다. 많이 싸웠다. 일방적인 놀림이었다고 생각했다. 가장 많이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조금씩 진심으로 싸운다.

저번에도 너무 얄미워서 정말 이번엔 절교해야 하나 고민하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일주일쯤 지났을  언제쯤 연락해야 하나 고민할 때쯤에 살아는 있는지 물으러 와줬다.


하마터면 나는 친구 잃을 뻔한 거다.     

아무렇지 않은  연락에 응했다.

네가 이래서 미웠어.

어떻게 그게 지금에 와서 미워질 수가 있어?라고 묻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또 꿋꿋하게 말한다.      


그래도 그건 미워할 수 있는 부분이야.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긴 것 같았는데 그러고도 괜찮은 것 같다.

가끔씩 들쑤시는 같은 송곳 같을 때가 있지만. 뭐, 또 절교하면 된다.     

     

그는 내가 힘들었던 순간에 등대 같았다.

아주 처음에 만났을 때도 그랬다. 자기에게는 기대는 사람은 많은데 자기는 기댈 곳이 많지 않다고.

여전히도 그는 많은 사람들의 등대가 되어 주곤 한다.     

난 이제 그에게 등대에서 졸업시켜주려고 한다.     


한 사람이라도 줄어들면 네가 편할 거야.

그렇다고 난 너에게 고민을 말하지 않는 건 아니야.

이게 서운하다고 했던 네 얼굴은 종종 떠오르곤 한다.

사람이 성장하는데 왜 서운하다고 하는 거야.

그치만 알 거 같아. 네가 그래도 아꼈던 거 알아.

나도 널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     


나는 너에게 등대가 되어줄 수 없었던 게 미안했다.

함부로 아무렇지 않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게 미안했다.

그러자 대답했다.         


그렇지. 잘 사는 거랑 행복한 거랑은 다르니까.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 네가 따뜻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었어. 그때는.     

지금은 각자의 세상에서 시선을 다르게 본다는 걸 이해한다.

너는 너 대로 열심히 세상에서 걷고 있구나 하고.     

진심으로 싸울 수 있게 되는 과정까지 왔을 때도 한 번도 밉다고 하진 않았다.

그저 한심하게 여기거나 밥 숟가락 떠 먹여줘도 넌 먹지도 않지? 라며 타박을 세게 했을 뿐.      

언제나 옆에 있어 줬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는 내게 너무 커다랬다. 지금도 나보단 커다랗지만 왠지 사 년 전보다 작은 기분이다. 아니. 사 년 전보다 더 부드러워진 면도 있다. 너는 그때 조금 더 사포 같았는데 지금은 날카로운 종이 같아. 매끈하고, 글도 부드럽게 잘 써지는데 방심하면 베이고 마는 거야.   


나는 너보다 커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로 가고 싶다.

등대의 역할은 이제 안 해도 돼.     


그에게 전했던 이야기.     


#사진은 부산에서 풍경을 찍은 너구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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