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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22. 2021

그 아이 2화

그녀를 처음 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한참 축제 기간이었고, 모든 학년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기간이었다. 살기 위해 도망치듯 들어갔던 곳 도서관.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나는 만화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만화동아리에 들어서 그림을 방법, 만화를 그리는 법, 만화가 작가 분들을 만나면서 동아리 선배들과 재밌게 놀곤 했다. 축제 때 우리 동아리를 알리기 위해 나는 희생돼야 했다. 나에게 펭귄 복장을 하고 홍보하고 오라는 거다. 부직포로 만든 펭귄 옷을 뒤집어쓴 채로 학교 운동장을 돌아다녀야 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귀엽다며 잡아채거나 조금은 과격하게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도망쳐 다녀야 했다. 얼마나 심했냐면 헤드락을 거는 못된 친구도 있었다. 부직포라는 가면 덕분에 나는 귀여운 척도 하고 같이 싸우기도 했지만 역시 혈기왕성한 남자 청소년을 대상으로 나는 이길 순 없었다.     


살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나는 가장 조용할 것 같은 곳을 찾아 나섰다. 그게 도서부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도서부는 조용했지만 나를 보자마자 ‘귀여워’를 연발하는 도서부 친구들이 보였다. 그 사이에 내 12년 지기 친구가 보였다. 처음 봤을 때 생각했다.     


쟤가 동물이랑 더 닮은 것 같은데.     


동아리 홍보 후 나는 또다시 운동장을 세차게 도망쳐야 했다. 펭귄을 추적하는 녀석들은 너무 많아서 괴로웠다. 바닥을 구르고, 너덜너덜 해져버린 채로 아마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다시는 귀여운 코스프레 같은 건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그녀를 다시 만났고 그 인연으로 우리는 쭉 함께다.

그 애는 나를 펭귄, 나는 그녀를 오리를 닮았다 하여 나는 오리라고 부르고 있다. 아, 지금은 그녀가 너무 애교가 많아 때때로 ‘자기야’ 라며 콧소리를 한껏 내며 애교가 묻은 말투로 나에게 시시콜콜한 전화를 걸곤 한다.     

오늘은 뭐를 사려고 했는데 이게 예뻐, 저게 예뻐? 이미 수차례 다른 친구들에게도 고민 전화를 돌리고 나서 나에게도 온 것이었다. 저게 이쁘다고 하면 자기는 이게 이쁘다며 고민하고 있다. 그럼 네가 마음에 드는 걸 사. 하면, 저것도 예쁜걸? 하며 고민하고 있다.


귀여운 친구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한 번도 소홀히 한 적 없는 아이다. 고등학교는 갈라졌지만 운동장은 같이 쓰고 건물만 다른 고등학교에 각각 입학해서 매일 아침에 같은 스쿨버스를 타고 3년을 등교했다. 고등학교 때는 수험생이란 이름에 예민해진 탓에 매일 아침이면 짧은 인사를 하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 애는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나는 자거나. 노래를 듣거나.


그래도 꼭 내려서는 손 잡고 건물 앞 까지는 가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 건 빼먹지 않았다.

잘 갔다 오라며 머리를 쓸어준다거나 하는 일 까지도.     


대학교가 결정 났을 때도 성실하게 공부했던 덕에 일등으로 아마 원하는 대학에 붙었던 것 같다. 고3이 되면 반 분위기가 그렇게 험악할 수가 없다는 사실은 분야가 달라서 이해할 수 있었다. 제대로 축하받을 수도, 축하받기도 미안한 상황이라며 나에게 전화했던 그녀에게 축하한다고 전했다.     


정말 성실한 친구다. 대학교를 가고 나서도, 취업을 하기 까지도, 아니, 취업을 한 후에도 계속, 계속 공부를 하는 그녀다. 이번엔 어떤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고, 이 자격증은 땄다고 꼭 전화까지 한다.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공부했는데 질력나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까지도 잘도 공부한다.     


그녀는 참 사랑도 많은 아이다. 나보다 애교도 많고, 웃음도 더 많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알고, 타인의 존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녀는 갖고 있다. 내가 한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을 때 그녀가 내게 생일 선물을 주면서 말했다.     


“내 과소비를 사랑해주어서 고마워. 너에게 해줄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네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니.

그 후론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편안하게 해 줬다.

그다음의 사랑은 이렇게 해야지 라며 다짐하게 했다.     

그녀는 또 키도 크고 손의 가락지도 예쁘게. 쭉 뻗은 팔, 다리를 가졌다. 그뿐일까. 사랑니가 없는 이빨, 신의 축복을 받아 충지도 없는 아주 가지런했다. 조금 부러웠었다. 또, 숨겨둔 비밀 무기가 있다. 어깨 쪽에 총, 발목에는 귀여운 십자 칼, 손목에는 달. 허리쯤엔 표범인지 호랑인지 모를 타투가 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늘어날수록 걱정돼서 한 소리했다.     


네 몸이 도화지야? 적당히 해.     


하고 말해도 아직은 세 개가 더 남았단다.

겁도 없고 매우 도전적인 정신 덕분에 매번 아찔하다.     


매일을 연락하는 사람들과는 좀 다르지만 뭘 하고 있나 싶으면 쪼르르 달려와 소식을 알리곤 한다. 내가 자신의 언니라며 언제나 답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틀렸다. 나는 너에게 더 큰 걸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언니일 수가 있니.     


이제 익어가는 나이로 접었는데도 여전히 두 뺨은 아이처럼 포근하고 쿡 찌르면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말랑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걱정과 다르게 알아서 커 간다.

좋아하는 것도, 가치관도, 스스로 확립을 잘하는 존경스러운 그녀.     


너는 네가 얼마나 멋진지 모르지?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사랑해주는 네가. 언제나 잘할 거라고 믿고 있어.

누구보다 자신의 세상을 꾸밀 줄 아는 네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순간을 많이 만들어내서 꼭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     

꼭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아도 좋아.

네가 생각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다면

그래도 좋아.     

행복해지렴.


부지런한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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