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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22. 2021

그 아이 3화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어렸을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친구가 옆 학교로 진학한다는 소식에 두 어머니들은 교통편이 나쁜 학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나 또한 학교 등교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스쿨버스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월 3만 원씩 내고 신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집 근처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에서 7시쯤이면 오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전 작에 소개한 오리와 함께 타기로 했던 첫날, 나는 무척 당황했다.     

모두 똑같은 옆 학교 교복. 나만 달랐다.


후에 알고 보니 옆 학교 친구들만을 위한 스쿨버스였다. 나만 다른 교복이라서 창피했지만 결심했다. 창피는 한순간이다. 편안함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선택했다. 3년 동안 스쿨버스를 타겠다고.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면 언제나 나는 우리 반에서 1등으로 문을 여는 아이였다.


단, 단발머리 소녀의 주혜가 나타나기 전까지.     


7시 20분쯤 학교에 도착하면 나는 곧장 교무실로 들른다. 아직 출근하실리 없는 담임 선생님 자리를 뒤로 하고 우리 반 출석부와 키를 가져가려 했는데 없었다. 누군가 먼저 왔단 이야기다.      


그럴 리가 없는데.     


1등을 뺏겼다는 생각에 올라가 보니 같은 반이었지만 한 번도 이야기 나눠 본 적 없었던 단발머리의 아이가 다소곳하게 자기 자리에 앉고 있었다. 한동안 경쟁하듯이 이름도 묻지 않은 채 그녀보다 빨리 오려고 노력했지만 엎치락뒤치락했다.


결국 나중엔 아무래도 좋아졌지만 한동안 충격적이었다. 나보다 빠르게 오는 사람이 있다니.     


더 친해지게 된 건 1학년 2학기 무렵. 아마 하고 싶은 웹서핑을 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그 당시 즐겨 들었던 미드 드라마인 glee 노래를 듣기 위해 블로그를 둘러보던 중,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그 친구도 취향이었나 보다.     

친하진 않지만 얼굴이 예쁘고 귀여운 덧니가 있었던 옆자리 친구는 내게 ‘자리 바꿔줄게’라고 했다. 그렇게 그 단발머리 소녀였던 그녀와 함께 우정을 키우기 시작했다.      


난 이걸 좋아해, 넌 이거 좋아해? 나도 이거 좋아하게 될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야. 매번 컴퓨터 시간 때마다 자리를 바꿨고, 핸드폰 게임도 같이 하고 놀았다. 그때 당시엔 같이 노는 멤버가 있었다. 전학 온 친구가 우리랑 같이 노는 다른 친구를 뺏어가는 것 같아 질투가 난 다른 친구가 꽃가지를 꺾어다 주자는 순수한 생각들, 갑자기 학교에서 자고 가고 싶다는 말에 너넨 그러던지. 난 집에 가서 공부할래 했더니, 다음날 지도교실에 끌려가 2주를 반성해야 했던 이야기들, 같이 자격증 따자며 다섯 명이서 회계과목을 듣는 등의 추억이 많았다.      


가장 추억이 많은 건 옆자리에 앉게 해 준 착한 친구들, 그리고 끊임없는 사담이 가끔씩 추억거리가 되어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그 애들은 잘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그녀는 삶이 매우 바빴다. 그때 당시에는 같이 취업을 했던 것 같은데 나중엔 대학을 가고자 했다.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한 번도 그녀가 있는 대학교로 놀러 간 적은 없었다. KTX를 타고 가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매일 같이 주고받는 대화는 거칠기 짝이 없었고,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서로의 첫 연애 이야기부터 그치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은 연애 이야기.

졸업 후 걱정될 만큼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할 곳을 찾아다녔던 그녀가 나는 걱정되었다.


볼수록 야위어가고, 수척해져 가는 모습이 싫었다.     

만날 때마다 나는 맛있는 걸 먹이러 가고자 했다. 이렇게나 나보다 작아져 버린 그녀를 보면서 회사 사람들을 욕하곤 했다.


도대체 밥을 먹이면서 일을 시켜야지 이게 뭐야. 너 밥은 먹고 다니는 거 맞아?    

 

양 볼에 살이 없는 앙상한, 코트를 입어도 크게 느껴지는. 짧은 목 위로 올라온 단발머리가 더 마음 아팠던 겨울은 아직도 기억난다. 만나기로 했던 장소의 사거리 위에 펼쳐진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바라봤던 뒷모습은 아직도 내게 마음이 아픈 장면이다.  


그러고도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고자 했던 그녀를 나는 응원밖에 할 수 없었다.

때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울 수 있는 건 노력했다.

기댈 수 있는 등대가 되진 못해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항상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지 궁금할 정도로, 예술에는 흥미로운 시선을 던지는 그녀였다. 아, 그래. 내가 마음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하늘 사진을 좋아한다고 했던 그날부터 꾸준히 지금까지도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고 있다.     


나는 그 사진들을 모아 ‘사진 콜렉터’라는 앨범에 담아 글을 쓸 때마다 그녀가 준 사진으로 쓰고 있다. 어딘가 생각하게 만드는, 같이 간 공간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각도로 사진을 찍곤 내게 건네준다.     


자, 오늘 너를 위한 사진이야.     


마음이 울적하게 다가올 때도 그녀의 사진만은 반갑다. 가끔 답을 잊어버린대도 다시 보내온다.

또, 너를 위한 사진이라며.     

어쩜 나는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 친구들이 곁에 가득한지. 나는 내가 이다음에 죽거든 꼭 지켜주고 싶은 친구들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서 힘든 일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것보다 더 많이 보상받고 살았으면 하는 그들이.     


아, 그녀는 이걸 보며 무슨 표정을 지으려나.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사랑스러운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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