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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22. 2021

과도기 근처에서 서성이는 나에게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었다가 내 쉬어도 숨은 전혀 편안해지지 않는다. 첫 작품의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다. 지난 15일부터 22일인 오늘까지. 나는 행복하게 글을 썼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 그림 그리고 하루를 보냈던 날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눈만 뜨면 그림을 그렸고, 하루가 다 져갈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 마무리해야 할 때쯤에서야 놓고 잠에 들었다. 지난 한주가 그랬다.

    

브런치에 작가 선정이 되고 난 후부터 나는 어떤 글을 쓸까,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 어떤 순서로 나를 표현해야 하나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힘들었다. 브런치 도전 중에 너구리에게 도전의 대한 표현을 말했더니 응원은 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조금 충격을 먹었다. 물론 사람마다의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의 이유도 들었지만 조금은 슬펐다. 음, 조금은 응원받고 싶었는데 말이다.     


떨어졌다면 슬펐을 거다. 다행히 선정되고 나서 즐겁게 올렸던 글에 대해서 ‘좋아요’ 알림을 받았던 지난 한 주 동안 가장 행복했다. 아, 이래서 작가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브런치를 소개해주고 공모전까지 응원해주며 매 글마다 꾸준하게 덧글 달아주고 있는. 모두가 잠든 밤에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구해주는 나의 멋진 어른이자 지인의 덧글 덕에 나는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아, 나는 나의 성장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있나 말하자면…. 이제 막 시작했을 수도 있다. 아니, 그렇지만 나는 어느 정도 성장을 거듭해서 과도기쯤에 있다고 믿고 싶어서 과도기라고 칭했지만, 시작점에 있을 수도 있다. 본디 나는 아주 느려서 빠르게 걸을 수도, 빠르게 달릴 수도 없는 천성이다. 무엇이든 천천히 음미하고, 알아가야 이해하는 성질을 가진 친구라 나는 세상에 내던져질 때 조금은 버겁다.   

   

빠르게, 잘, 그렇지만 정확하게.      


그렇게 세상을 익혀가야 하는 굴레에서 나는 그 속도가 마냥 버겁기 때문이다. 세상엔 나 같은 속도를 가진 사람에게 상냥할 순 없는 걸까, 정녕 내가 가진 속도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순 없는 걸까에 대한 의문은 끝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도 굴러가는 곳을 찾아야 하고, 또 굴러가야 한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업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나 빠르게 뛰는 세상인데도 사랑해야 한다니. 참, 세상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 같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사랑하는 게 당연한 세상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보고, 되지 않는다면 또 물어가야 하는 것. 그것마저도 사랑하는 거라고 여겨줬으면 좋겠다.


아. 오늘 안부를 물었던 지인이 있었다.    

 

2년 전 알게 된 지인이지만 나보단 한…. 두 살쯤 차이 난다. 내가 더 ‘어른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지만 정신적인 것에선 나보다 어른인 지인이다. 원래 일하고 있던 직장에서 과감히 나와 새 직업을 구하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재 취업에 성공한. 내가 생각한 그는 약간 엘리트 같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달려 나가고 생각한 대로 성취하기 위해 느낌표만 찍고 가는 모습이. 티브이에 그려지는 엘리트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새 직장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들어와 내가 전한 소식도 들으며 서로 안부를 묻다 그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말해왔던 말이었다.

새로운 터에 오면 꼭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라고.

이번에도 그랬다. 어디론가 멀리 독립하게 되거든, 꼭 바깥을 둘러보라고.

생각보다 집의 환경이 바뀌어서 받는 스트레스는 눈치채기 어려워서 자신에게 선입견이 생겨버린다고.     

선입견의 의미를 까먹고 있었던 나는 다시 물었다.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거냐고.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찾아보게 되었다.

어떠한 것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이 선입견.     

즉, 그가 말하기를.


힘든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로 인해서 그 원인 때문에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게 되는. 아주 좋지 않은 선입견.     


그가 말했던 선입견은 이미 진작에 겪었던 진통이었다. 마음 병원을 가기 이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시야는 흐렸었다. 실금이 가고, 곰팡이들이 여기저기 진득하게 끼어있는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도, 쫓아가기에도, 생각하기에도 버거웠는데도 불구 아닌 척했으니.     

얼마나 내가 나에게 부담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의 생각들은 다른 가지로 뻗어나가고, 때로는 공통점이 있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옛날과 지금의 나는 그래도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도 다시 대답했지만, 그때와 나는 달라서 아마도 그 선입견에 대해서 조금은 다르게 대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글을 쓰는 이유도 그중 하나다. 마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언제 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제 이쯤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머무르고 있는 시점이 가장 위험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라도 근거 없는 자신감보단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털기 위해 부지런히 나에게 행복한 일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나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생기거든, 그래서 다시 생각이 어려워지거든 여기에 답이 있노라고 대답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쓴다.      


나는 내 마음의 가난이, 내 마음의 병이 누군가에게 쉬이 공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드러낸 것도 아닌 추상적인 가난을 펼쳐서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아플 땐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정도는 말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아팠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렇게 아팠다는 것을 모르고 흐릿한 시야로 어른스러운 척 한 내가 안쓰러웠고. 메모장 안에 묵혀두었던 수많은 슬픈 글은 열어보기가 버거울 정도로 숨 막히게 다가왔다. 그럴 정도로 나는 아팠다. 아마도, 누군가도 분명 이런 슬픔이 있겠지.     


지금은 그 아프게 적었던 메모장의 글은 지웠다. 대신, 새로운 깨달음이 생길 때마다 다이어리, 메모장, 원래라면 인스타였지만. 여기에 남기려고 한다. 그가 말한 선입견을 이렇게 하나씩 버리고 있다고.      

가까운 미래에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아직은 부정적인걸 보면 더 한참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 ‘있을까’부터 의심을 하는 것부터 지우는 연습이 필요한 거라고 본다.     


가을이 왔다. 내 계절은 아직 올해 여름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돌발성 장마가 오고 가고를 반복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뺨이 스치고 단풍잎으로 옷을 갈아입는 나무처럼, 즐겁게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가기엔 아직 살짝 어려운 감이 있다.

아주 지나치게, 빠르게 가을이라고 속단하기에도 부족한 어딘가를 일부러 메꾸고 싶진 않다.

진심으로 사계절을 다 겪고 난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서 여기에 남겨둘 거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그렇게 슬픔으로 잠겨 살던 사람들도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겨울을 거치고, 다시 봄을 느낄 때에는 웃으며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애매하게, 때로는 더 크게. 구불하고, 저릿하고, 환희가 가득하고, 슬픔이 만개하고, 꽃이 만개하고, 달콤함이 서려있는.     

내 방식대로의 글로 위로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웃을 수 있겠지.

그러면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이 안아주고 웃어주겠지.     

그렇게 위안하며, 천천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곳에 선명하게 남기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사진은 멋지게 새 시작을 출발하고 있는 고라니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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