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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07. 2021

외로움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한 3년 전쯤이었다. 아마 이맘때쯤이었는데 마음의 외로움이 극심할 때였다. 사람을 만나도 외로웠고 만나지 않아도 외로웠다. 친구와 술을 먹을 때에도, 돌아설 때에도 말이다.    

 

그때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정체 모를 감정이 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언제나 똑같이 술을 먹고 헤어지는 길. 이어폰 너머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땅만 쳐다보며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감정의 파도에 들어갈 때쯤이었다. 다른 약속을 향해 간 줄 알았던 친구의 운동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내 옆에 친구가 우뚝 서서는 웃어줬다.

그때 어렴풋이 안 것 같다.      


아, 나 외로움을 앓고 있구나.

근데 이 외로움은 평생 안고 가야겠구나.   

  

동시에 고마웠고 슬펐다.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는 쓸쓸함이 있다는 것은. 

일 년 동안 헤매고, 헤맸던 것이 이런 감정이었다니. 인정하기까지 일 년이 걸렸다는 게.

근데 또 그게 퍽 서러웠다. 어디에도 말할 수도 없는 외로움 같아서. 

그래서, 또 그 사실에 몰래 울었던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오늘날 내 마음을 고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많은 어른들에게 비밀이다. 

아니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가 비밀인지 나는 모른다.     


오늘은 오빠 결혼 덕을 내는 날이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외가 어른들이 다 오는 거라고.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조금은 신이 났다. 최대한 예쁘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착한 아이, 엄마 곁을 지키는 아이.

예뻐졌네, 예뻐졌어.      


딱 그 정도의 시선이었지만 괜찮았다. 든든해 보이진 못해도 비틀거릴 정도는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아직도 비틀 거리는 걸로 보이면 어쩌지. 내일 안부 인사드릴 땐 꼭 말씀드려야지.     


아쉬웠던 큰 이모의 품은 세 번이나 안겼다. 항상 멀리서 지켜봐 주는 또 다른 나의 엄마.

말은 많이 안 나누지만 항상 너무 좋아해요. 그때 결혼식 때는 울었는데 이젠 폭 안겨서 웃을 수 있어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하며 말하고 싶었다.     


음식들을 다 치우고 양치하며 문득 생각했다.

외로움과 친구가 되면 어떨까.

계속 갈 거라면 친구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근데 난 변덕이 심해서, 아직 여름 장마에 시달리는 내가 가을 낙엽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직은, 아직은…. 그치만, 내년에는 고모가 되는데.

그땐 고모가 더 단단해야 하는데. 

예쁜 옷도 사줘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 풍경,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붙이지 않아야 하지만.

하나하나 징검다리 건너듯이 낙엽 하나, 햇빛 하나, 날씨, 온도에 아무렇지 않아 질 때가 되면

그땐 친구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모두가 그렇게 하나의 외로움쯤은 안고 사는 걸까.

모르겠지만 필요로 하는 답이긴 하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거야, 산다는 건 그런 거야로

툭, 하고 사는 인생살이가 될 때까지. 그렇게 되려면 이 외로움보다 마음의 부피가 커지거나 

인정하고 더불어 살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선택지만이 답이겠지.     


아니, 부피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그런 거야로 될까.

오늘의 답은 언제 나에게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언제 답을 얻을 수 있으려나.

기대하게 된다.      


난 내 비밀창고가 생겨서 좋다.

내 비밀창고를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또 창피한 줄 모르고 다 말해버리는 내 일기장을 살짝 엿보고 가주니까.   

  

너무 좋다.

비밀 창고는 내 즐거움이다.          


#사진은 오늘의 따끈한 작은 비행기를 보내준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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