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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09. 2021

나 또 태어날 수 있어

오늘도 또 들고 왔다. 가장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는 슬픔 일기장.

한껏 슬픔을 가득 담은 일기장을 한번에 꺼내기엔 너무 울 것 같아서. 

초겨울이 오고 있는 가을 끝자락 앞에서 살며시 감정을 조금 덜어낸 이야기를 말해 보려고 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추운 겨울에 문득 생각이 스칠 때 엄청 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기도 했고, 조금씩 꺼내다 보면 언젠가는 옅어져 사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꺼낸다.    

 

진정 슬픈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모두 꺼내야 한다는 어미의 말이 무척이나 부담스럽지만 언젠가 한 번쯤 그렇게 슬펐다고. 그렇지만 그 슬픔이 절대로 나의 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은 ‘사랑을 양보하기’와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이다. 이젠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때때로 어딘가에서 발현된다. 두 가지 습관은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다.     

 

화목하지 못했던 집안에서 나와 오빠는 자랐고, 오빠는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아비가 ‘자식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적대감을 한껏 직접 몸으로 느끼며, ‘자기에게 굴복해야 하는 못난 자식’이라 여기는 아비에게서. 어미를 지키려 했고 동생을 지키려 했다. 자기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해서 기둥이 돼보려 했지만 어린 나이에 그걸 감당하기란 어려웠을 거다.   


그런 연유로 그 못난 아비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오빠는 질풍노도 시기가 왔을 때 아주 큰 수렁에 빠지고, 엇갈리고를 반복했다. 몇 년을 거쳤던 그 시간 동안 어미는 오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런 어미를 옆에서 보듬고 남몰래 울었지만 알고는 있었다. 

내 어미의 노력을 안다면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라는 것을.     


그 덕에 습관이 생긴 게 있다면 내가 없어도 되는 자리가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오빠가 어미와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항상 빨리 자리를 빠져나와 방으로 들어와 음악을 듣곤 했다. 조금이라도 마음껏 이야기하길 바라면서.     


그 후 나는 시간이 흘러, 외로움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많이 음악을 들었다. 슬프고 낮은 노래들을.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 손디아의 ‘어른’이었고, 유튜브로 ‘나의 아저씨’ 드라마 영상이었다. 드라마 클립을 모두 재생하며 귀로 듣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모든 순간의 소리와 말들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고 잠식할 수 있었던, 한껏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병원을 다니고 시작한 후부터는 그 노래도, 그 드라마 유튜브도 잘 클릭하지 않는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 혹시라도 잠식될까 두려운 게 이유다. 아마 거대한 파도가 또 밀려오면 찾을지도 모르지만, 나아지고 있는 중간에 보기에는 숨이 막힌다.

사실 지금도 숨이 막힌다. 진짜로, 슬펐던 이유를 최대한 정제해서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걱정 말라.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내 마음 하나 들여다 봐준 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도 나를 온전히 응원해 주기도, 곁에 그저 머물러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로 올 수 있었고, 오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다. 자신의 슬픈 과거로 인해 더 이상 회사를 다니기 어려워지자 무단 퇴사를 하고, 오롯이 유일하게 네 번 이상 잘해줬던 동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처음이었는데.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어요. 

또 태어날 수 있어.

괜찮아요.     


그때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으로든.

그저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었던 그 시간 속에서 작게 소망이 생겼다. 

고양이로 태어나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

남들이 들으면 웃을 수 있는 소망이긴 하다. 사람도 아닌 동물이라니.   

  

이번 생에는 나와의 싸움을 천천히 이겨내고 어디까지 살 수 있나, 어디까지 행복할 수 있나를 보고 싶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의 행복이 찾아올지는 참 모르겠으나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볼 거다.     


이젠 만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눈 닿는 곳에 있겠다며 든든한 사람이 되어줬던 그에게.

항상 사고만 치는 철딱서니 없는 여동생으로 보는 친구에게도, 항상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주는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에게도, 행여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하며 보는 대학교 친구들에게도. 현재 만나고 있는 다양한 마음 친구들에게도.     


정말로 온 마음을 담아서 또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삶을 이어가고 싶다.     


#사진은 언제나 고마운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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