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림 Nov 11. 2021

우리는 머쓱한 사이

내게는 오빠가 둘이 있다. 세 살 터울의 내 하나뿐인 혈육 친오빠와, 피는 안 섞였지만 오빠와 머쓱한 사이로도 못 올 때까지 친구이자 오빠 역할을 해준 한 살 터울인 너구리. 


오늘은 세 살 터울의 오빠인 혈육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혈육은 바깥에서 자라야 했던 시간이 길었다. 바깥이 썩 편하진 않았겠지만, 억지로 집에 들어와 맘을 다듬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시간을 때론 이해하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허수아비 막내 자리가 아닌, 분노를 온몸으로 받았어야 했던 장남의 자리가 더 거칠고 차갑다는 것을.

오빠도 그 시절 외로운 서울 동네의 찬 공기를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음을. 오갈 데가 없어서 차가운 빌라 계단에서 잠드는 것은 아니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던 건 오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마음 병원을 가기 시작했을 때 오빠가 내게 그렇게 말해줬다. ‘마음의 울타리를 내려보자’고.

그 이야기를 해준 이유는 아마 본인도 그렇게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거나 인정 하지 않는 아비에게도, 그런 아비에게서 지켜주고 인정해 주려고 했을 어미에게도, 나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한 켠에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수만 번, 수천 번 자신과 이야기해서 마음의 벽을 부수고 용기를 가지고 온 것일 거라고.

    

아직도 우리는 단둘만 남으면 머쓱하다. 그 머쓱한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오빠는 짓궂게 굴고 예쁘게 말하진 못해도 최선을 다해 순화시켜 말하는 행동을 보면 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걸 아주 많이 느낀 것은, 그 머쓱한 우리 남매가 어젯밤 돌아가신 친할아버지 제사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이 느꼈다. 조금은 솔직한 이야기들로 자신이 어떻게든 간극을 메꾸고 싶어 하는 오빠를 보면서 새삼스레 고맙기도 했다. 


난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도 고민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 대견하게 잘 살아가면서 한 가장으로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맙다. 도움은 못 주겠지만 행복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다.     


내 세상의 하나뿐인 혈육.

마음껏 세상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과 많이 투쟁했던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파이팅.     


#오늘의 사진은 커피 사러 가기를 응원해 준 주혜가.

작가의 이전글 나 또 태어날 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