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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19. 2021

걷는 게 아니라 뛰어야 한 대요.

내가 너무 힘들 때 듣는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리메이크한 개여울만 쭈욱 듣는다. 아니면, love poem만 듣거나.   


개여울을 들었던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을 미워할 때 들었던 노래다. 지나가는 사람의 숨소리도 듣기 싫었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지나가는 그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혹여 옷깃이라도 스치면 날 선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땐, 증오도 가득했지만 이런 표현을 내가 쓰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사무쳤다. 하염없이 흘렀던 눈물이 마를 새 없었던.

고스란히 뒤섞여 올라오는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고, 흘려보내기 위해서 또, 듣고, 듣고….

가장 좋아하는 가사 부분이 있다.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그 사무침의 감정은 어제의 눈물과 많이 흘려보냈으나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른 감정들은 어떤 비유를 해서라도 적는데, 단 한 줄도 쓰기가 어렵다. 대신 이걸 듣는 내 모습을 표현하자면 납작 엎으려 통곡하고야 마는. 그런 거다.     


요즘 일상의 변화가 생겼다. 일상의 변화가 생겨서 불편한 점은, 사람과 다시 섞여야 한다는 것이 가장 불편한 변화다. 서러움 따위는 아주 모르는, 안의 일을 바깥으로 소리 내지 않는 연습.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줄이고 당당해졌으면 하는 동생의 바람과 무색하게, 어딘가 움츠러들고 만다. 어려운 일이다. 웃어야 할지, 표정이 없어야 할지. 내 구두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작게 걸어도 사무실에 울리는 소리마저도 조심스럽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네가 심각하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심각하게 생각해.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지안에게 하는 말이다.

가끔씩 이렇게 불편할 때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니다.     


삶의 변화를 겪어야 또 글을 쓸 수 있다. 불편함을 겪어야 또 아는 척 할 수 있다.

가끔은 서른 살의 나를 상상한다. 20대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른 살을 맞이하는 그때엔 나도 20대에게 웃으며 안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안녕을 같이 해주는 사람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그땐 얼마나 자라 있을까. 

그땐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을까.

내 느릿한 걸음을 사랑해 주는 사람도 생길까.     


또 걱정한다. 너무 느려서.     


웃으며 말하고 싶다.

안녕, 이십대.

안녕, 삼십대.     


그녀처럼 말이다.          


#오늘의 사진은 출사 나갔던 주혜에게 선물 받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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