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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20. 2021

내가 사랑하는 아이

요즘 최근의 일기장을 보면 마음이 뒤죽박죽 상태인 걸 확인했다. 쉬어가는 타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아이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영원한 나의 공주님.

나의 침대 메이트. ‘현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 2년 전쯤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때에도 마음은 소란스러워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꼈던 오빠가, 조금은 매개체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돌연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회색빛 털에 고등어자반 같이 느껴지는 털 주름을 가진 귀여운 아기. 하지만 다른 아기 고양이들처럼 귀엽게 비벼대거나 하진 않았다. 오빠의 말에 의하면, 입양소에서 현자만 등을 돌리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더란다.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던 아이. 

그렇게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왔다.     


녀석이 온 뒤로 아빠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털이 달린 동물은 바깥에서 키우는 거라며.

오빠가 일하고 있는 매장에 당장 데려가라고 성화였지만, 오빠는 딱 중성화할 때까지만, 매장이 자리 잡을 동안만. 결혼하고 분가할 때까지만, 그렇게 이유를 붙여서 오래도록 아이를 집에서 머물게 하였다.    

 

2년 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그 수많은 이유들이 늘어나는 시간 동안 현자의 소울메이트를 자처했다. 곁을 내주진 않았지만, 매일 15분, 30분씩은 꼭 놀아주곤 했다. 그래도 그 흔한 ‘야옹’ 소리도, 가까이 와 부비는 애정표현도 잘 받을 수 없었다.     


같이 있는 시간은 내가 제일 긴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 엄마였고, 나는 그저 놀이 대상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최고의 애정 대상은 오빠인 것은 다름없었다. (솔직히 조금은 야속했다. 의식주 돈은 안 냈을지언정 최선을 다했는데.) 

아, 아빠와는 데면데면했지만, 새벽에는 함께 하는 사이였던 듯하다.     

 

그렇게 마음을 얻기가 별 따기인 이 공주가 첫 야옹 소리를 한 건 6개월이 좀 지나서였다. 중성화를 마치고 나서였는지, 후였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늦은 퇴근을 하는 엄마에게 일부러 저녁을 맡길 때였다. 아이는 자신의 밥을 주는 건 엄마인 걸 아는 눈치였다.

엄마의 곁을 맴돌며, 아주 작게 ‘야옹’ 하는 것 아닌가.     


너무 신기해서 조금 느린 척 주지 않으면 또 작게 ‘끙’ 하며 엄마를 올려다보는 그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마음을 조금은 열은 듯했다. 그런 모습이 좋아서 아침과 점심은 내가 담당하고 늦은 저녁은 엄마에게 맡기곤 했다.      

아, 싫은 표현도 했다. 코끝 인사를 해달라고 할 때면,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하기 시작했다.

아주 귀엽게 또 ‘끙’ 한다.     


낮에는 베란다에서 새를 볼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두면, 맘껏 하늘과 새를 보고 나왔다. 그럼 공놀이와 사냥놀이도 했다. 한때, 우다다를 방지하기 위해서 거실에서 끝과 끝을 달릴 수 있게 털실 공을 던져주는 걸 한 10번쯤 하면 현자는 지쳐서 잠들곤 했던 귀여운 추억도 있다. 마음에 드는 낚싯대로 1시간 30분 동안 놀았던 광란의 시간도 있다. (이때는 내가 죽을 뻔했다. 계속 놀자는 통에.)    

  

그런 시간을 통해 나와의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진 듯했다. 현자가 오고 난 후 1년 후 여름휴가 때쯤이었다. 나를 뺀 모두가 휴가를 갔다. 자신과 나만 남은걸 의식한 현자는 큰 방에서 나와 3일 동안 같은 침대에서 시원하게 잔 추억도 있다.   

   

발치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털, 동그랗게 말고 자는 저 아이가 혹시라도 자리가 부족할까 좀 더 구석으로, 구석으로. 하다 보니 나는 구석에서 쪼그려 자야 했다. 나중엔 그 이후로는 아침이면 내 방으로 와 아침을 요구하기도 하고, 잠을 더 자기 위해서 비좁은 내 침대에서 함께 자곤 했다.      


아, 가족들이 다 나가면 서럽게 야옹 하기도 시작했다. 특히, 오빠가 늦게 오는 새벽 시간이면 야옹 하는 통에 가족들이 다 잠들 시간이 오면 오빠 방에서 같이 기다려 주거나 재우는 시간도 허다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신발 끈(일명 놀이 끈)을 물곤, 스크래쳐 통에 들어가 구슬프게 우는 아이를 외면하기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귀여운 아이. 너는 내가 제일로 지켜야 하는 아이.

무는 게 좀 아프지만 괜찮아, 네가 할퀴어도 괜찮아.

네 품은 너무 포근하고 좋아.

너를 소개하면 조금은 포동포동해서 다들 크다고들 하지만 괜찮아.

내 귀여운 아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더 오래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그 귀여운 아이와의 이별은 작년 8월쯤 왔다. 양가 집안의 어른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던 날, 현자와의 이별은 결정됐다.

집에서 마지막을 기다리던 나는 오빠가 들어오자 직감했다. 이제 이별해야 하는구나.     


집에서 고작 15분쯤 떨어진 곳으로 가는데 눈물이 났다. 아마 오빠와 나는 현자라는 아이를 통해서 감정을 많이 소통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잘 살아. 내 아기.

사랑해, 꼭 집에 가서 잘 살아.

많이 사랑했어.     


그땐 그 말을 하며 왜 그리 눈물 났는지. 오빠와 나만 아는 감정인 듯했다. 눈물을 훔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이별 아닌 이별이 슬펐다. 그렇게 보내고 난 후, 감정을 추스르고 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 더 웃겼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아빠는 거실 책상에 덩그러니 앉아 ‘오늘 아빠의 친구가 떠났어’라며 우는 통에 달래야 했고, 엄마는 사춘기 소녀처럼 집으로 들어와 내게 ‘현자 갔니?’ 묻더니 겉옷을 팽개치며 침대에 엎드려 우는 것 아닌가. 두 사람을 달래는 것은 다 내 몫이었다.      


그 후, 종종 그 아이가 너무 보고 싶을 때면 보러 가곤 하지만 예전만큼 애정 표현을 나눌 수 없었다. 홀로 예쁨 받고 커왔던 현자에게 둘째 ‘베베’가 온 뒤로는 말이다.     


그 아이는 여전히 사진을 볼 때마다 예쁘다. 후에 알게 되겠지만 나는 개와 고양이 알레르기가 모두 있는 슬픈 체질이었다. 현자를 돌볼 때 그렇게 힘들지 않았지만, 모른 척 동물을 키울 수는 없게 됐다.     


내 사랑하는 아기.

오래도록 사랑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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