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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18. 2021

거꾸로 가는 아이


파도가 넘실 거린다. 이렇게 울컥 하고 새어 나오는 감정들을 온 마음으로 느낄 때마다, 그 감각이 되살아날 때마다 느낀다. 숨이 차고 심장이 저릿하다. 그때 느꼈던 슬픔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묵혀있다가 이렇게 새삼스럽게 선명해진다는 것을. 


그날, 내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 그의 얼굴은 모멸감과 좌절이 담긴 얼굴이었다. 울음을 꽉 삼키는 눈, 보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만으로도 상처가 될 수 있단 걸 그때 느꼈다. 내뱉는 숨이 새어나가지 않길 바라며 폐 밑으로 끌어내린 숨은 한 줌이 더 됐을 텐데. 그날 당신만 몰랐다.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둘 중 어느 것이 진실일까를 생각하며 당신을 바라봤을 때 알았다. 까맣게 묻어뒀던 분노가 섞인 원망은 하나도 희석되지 못했다는 것을. 영영 희석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울컥하여 뱉을 뻔했던 원망을 집어삼켜 가며, 들어야 했던 그 말은 가끔은 이렇게 다시 기억나곤 한다.     


네가 무엇이 부족해서 세상에 나가지 않느냐고.

한 번도 세상에 부딪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제일 쉬운 것이 어려운 게 되어버린 것이, 그렇게 어렵게 받아들이게 된 자신을 가엾게 여겨야 할지 질책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사실은 어렵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들을 만큼 가볍게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열심히 살지 않았을지언정, 내가 살아 있는 가치만큼은 조금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거 하나면 됐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하나도 어렵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일 할 일이 있으니 산다는 마음을 갖고 싶은 게 어려워지는 게, 어렵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게 더 싫다. 

목적이 없었어도 살 수 있었던 때가 그리워질 정도로.     


숨을 다시 들이마시고, 천천히 생각한다.

내가 들었던 사랑의 언어들을 또 되새긴다.

정말로 되새길 때 아픈 건, 어떻게든 힘이 되었으면 했던 내게 준 그 말은

이렇게 잔뜩 구겨진 모습일 때 받았던 말이었기에 아플 때가 있다.

안타깝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내뱉은 말 들 중 어떤 것들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친구에게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을 때 친구는 내게 되물었다.     


진심이야?     


반문하는 사랑을 하게 되는 건 구역질이 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사진은 오늘의 달을 보내준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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