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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Nov 14. 2021

어느 쪽을 더 사랑해 줄까요?

 오늘은 출근을 하루 전으로 앞둔 밤에 노트북을 켰다.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생긴다는 것은 왜인지 꼭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하지 말라며 떼어 놓은 기분이다.  사람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비뚤게 적은 글씨 같은 마음인데 한 줄이라도 더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피어오르는지 모르겠다.

펜으로 쓰면 적어지지 못하는 마음이 컴퓨터로 쓰면 왜 더 진해지는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왜 그렇게 적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근데, 오늘도 더 쓰고 싶었어요. 

떼어 놓은 글을 하루라도 더 적고 싶었어요.     


이번 일기장은 금요일부터 시작한다.

금요일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화해를 하고 왔다. 묵은 화해라고 표현했지만, 마땅한 표현이 없었다. 별안간 잘 보고 싶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보고 싶다고 한 까닭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이번 주에 보지 않으면 나를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고.     


서로에게 아직도 지뢰가 있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다 좋은데, 자신에게 건네준 편지가 나를 살렸다고. 

아직도 앞으로 싸울 게 남아있냐며, 시답잖게 또 투닥대다 약속했다.

싸우게 되면 돌아서서 가버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화가 난 이유를 말하라며. 

공감을 원하거든, 해결이 보이는 것이라면 공감을 해주겠노라고. 

그리곤 또 얄밉게 나를 놀리는 그 녀석이 밉진 않았다.

또 그랬다. 네가 달라져 가는데, 자신을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격지심이라고.     


그렇구나, 난 아직도 한참 고쳐야 할 게 많구나. 

그럼 이것도 자격지심 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을 더 사랑해 줄까 하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어제는 자격지심을 배웠더니, 오늘은 에스프레소를 배웠다.

아메리카노보다 맛있는 에스프레소. 와인처럼 즐겨야 하는 에스프레소.

혀 아래, 입천장, 입안에서 맴도는 에스프레소는 넘기는 끝 맛이 그렇게 쓰진 않았다. 


오묘한 달콤함.


오히려 그 옆에 같이 온 샘플러 라떼가 더 쓰다고 느낄 정도의 에스프레소는 어려운 세계가 아니었다. 

입안의 도는 향을 탄산수로 잡아주면, 비로소 완벽해지는 커피의 세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발코니 석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의 설명을 들으며 핸드드립 하는 직원의 손길에 시선이 꽂힌다. 

이젠 나는 ‘아메리카노보단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요 라고 말해도 되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럼 직원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말 거야, 하는 상상 하며.


여러 가지 커피에 대한 이야기들. 나는 모르는 세상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재밌다.

모르는 세계를 아는 저 사람의 이야기 중 한 가지는 덜 부러워할 수 있게 된 내가 좋다.    

 

저기 지나가는 언니. 나는요, 에스프레소를 알아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먹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누었던 질문이었는지, 대화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매일 같이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왜 몇 시간 전 일인데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기억이 안 나는지 미안할 지경이다.     


그치만 에스프레소는 기억해요.     


뭐 어쨌든,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도 인스타에 올릴 땐, 이런 감정을 자주 올리기엔 한계성이 있으니 내 비밀 창고가 생긴 이후로는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쓴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것도 사실인데, 사실은 조금 더 비밀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어미의 가게 유리창이 깨져 있거나, 집안이 망가져있거나.

어미의 가게의 바로 옆 호프집 이모네서 새벽을 달래거나 전화를 빌리는 일이 있었거나.

어떤 이유로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담배 연기가 자욱했던 당구장에 머무는 게 몸이 영 쑤시는 이야기나, 어미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거운 물통으로 보리차를 끓였던 이야기나.

매일 밤이면 가로등이 적은 골목을 누비며 누군가를 찾아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일들을.

내가 무서워서 우리 남매 품에 있어달라고 부탁한 걸 후회한다는 그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서 매일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돌아와서 쓰는 열린 비밀이다.     


선생님 앞에서 말하면 우는 이야기들인데, 글로 적으면 마음만 조금 적셔질 뿐인 이야기를.

또 한 번 녹여서, 녹아질 때까지, 쓰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어떤 글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전염되지 않는 슬픔이 있다고.

실험해 보고 싶기도 한 기분이다. 전염되지 않은 채, 온갖 날 것을 보여주는 내 일기장을 

보고도 똑같은 나로 봐줄지에 대한 곁눈질하는 나,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나.


그래도 전염되지 않을 수 있을까. 똑같을 수 있을까.

갓 따끈하게 내온 코코아 같은 사람들, 아메리카노 속에 퐁당 빠져 있는 기분 좋은 얼음 같은 사람도, 무알콜 맥주를 즐겨주는 보드카 같은 사람도, 때론 일부러 묻듯이 하는 거야.

이것도 자격지심일까 묻고 싶어 진다.      


고쳐야 할 것들은 너무 많아서 눈을 감고 모른척하고 싶다.

글을 떼어내고 싶지 않은데, 이 밤이 지나면 당분간은 지나쳐 가야 한다는 건 너무 괴롭다.     


그치만 배웠는걸.

자격지심과 에스프레소만큼은 강렬하게 배웠는걸.

그러니까, 너무 좋았다고.

또 남겨야 하는 걸.

나는 또 오늘이 달라졌다고 자랑해야 했다.  

   

맞아, 자랑도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칭찬해 줘요. 

나도 몰랐던 이야기라면서.          


#사진은 여의도에서 연말 선물을 사러 간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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