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오기 전 나는 종종 술을 찾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일본식 이자카야였다. 꼬치구이와 나가사끼 우동 그리고 소주.
사람 살이가 다 그렇듯, 술 먹는 이유는 비슷했다.
오늘 상사가 너무 화가 나게 해서. 그냥 술이 먹고 싶어서. 오늘은 비가 오니 적적한 기분이 들어서.
그러면 금요일 저녁에 홍대로 간다. 여덟 시에 만나기로 하고 먼저 간 사람은 주문을 해 놓는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대각선, 혹은 우측 자리의 널따란 자리에 앉곤 했다. 서로 앉고 눈이 마주치면 소주잔을 든다. 그럼 가득 한 잔을 따라 주고 말한다.
첫 잔은 원 샷이지.
꼴깍. 넘기는 술은 적당히 쓰고 달았다. 안주가 나오기 전 먹는 단무지의 맛도 달콤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섯 종류의 꼬치구이가 일차로 나오고 또 그다음에 우동이 나온다.
그럼 우리는 또 안주를 집어 두 번째, 세 번째 잔을 든다.
그때 나누었던 어떤 대화는 선명하기도, 흐릿하기도 하지만 꽤 진지했다.
그중엔 너의 행복을 바라기도 하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하고, 너무 흔들려 울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 앞에 있어 준 친구는 말없이 잔을 들어주기도 하고 어리광을 들어주기도 했다.
딱 한 잔만 더 하자.
이미 취했으면서 하는 말.
그럼 친구가 묻는다.
너, 더 먹을 수 있어?
진짜 먹을 수 있어.
그럼 친구는 못 이기는 척 한 병을 더 시키곤 내가 두 잔을 더 먹을 동안 남은 다섯 잔을 먹어준다.
요즘 가끔 술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부딪히는 잔, 맛있는 안주. 쓸데없는 농담, 서로 사는 이야기, 가끔은 진솔한 이야기들 같은 거.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술이 너무 먹고 싶어요.
왜 먹고 싶어요?
그냥 그런 날 있잖아요. 비 오는 날 파전 먹듯, 가끔 소주가 당기는 날 있잖아요.
그럼 아주 많이 마시는 게 아니니 드셔도 될 것 같아요.
혹시나 잘못될까 금해뒀던 술을 마셔도 된다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병원 길을 나섰고 친구에게 말을 했다.
술을 마셔도 된대. 조만간 먹자.
나는 곧 소주잔을 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