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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Jan 09. 2022

글의 방향


최근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글의 대한 방향도 명확해 보이지 않았고, 써 내려간 글은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도, 무언가 자꾸 부족한 점이 보여서 쓰는 것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글을 쓰기 시작한 첫 시작은 나 자신 안의 좋지 않았던 기억, 감정들을 정제한다는 마음으로 썼다. 사람으로서,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인스타그램에 적은 속마음도,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의 그 시작의 이유는 틀림없이 나를 위함이었다. 현재의 내가 겪는 같고도 다른 감정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과거의 나에게 물을 수 있는 지표가 되는 글을 쓰고자 했고, 거기엔 약간의 공감을 바랐던 것은 사실이다.     


‘네 감정에 공감해’도 있지만 ‘너 참 글 잘 쓴다’의 의미를 같이 담은 공감을 바랐던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내가 글을 쓰고자 했던 본질이 흐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공감은 별개인데도 말이다.     


요즘은 참 모든 것들이 ‘나도’, ‘쉽게’ 할 수 있다. 라는 컨셉으로 글도, 그림도, 직업적인 것들도 힘을 들이지 않고 ‘잘’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사실 거기에도 혹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잘’ 써 내려간 글로 인정받아서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던 것 같다. 아니, 제법 부러웠다. 음, 그래서 어쩌면 ‘나도’ ‘쉽게’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재주를 너무 확대 해석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글은 계속 쓰고 싶다. 그렇지만 누군가 반응해주기에 쓰는 글이 아니라. 그냥, 조금 더 다듬어진. 그리고, 그 글을 읽고 ‘좋아해’라고 말을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글을 쓰고 싶다.


음, 이게 굉장한 의미가 되어서 파급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이자 슬픔의 원인이 어떤 것인지 밝히는 것도 읽는 사람에겐 도움 되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가정폭력을 겪었고, 현재에도 분리되지 못해서 간간히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지금까지 쓴 글들은 그 폭력에 의해서 아팠던 마음들을 풀어낸 것의 일부이다. 나는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쓸 마음은 하나도 없다.      


다만 폭력을 당했을 때 겪었던 외로움, 슬픔, 힘듦을 적어내며, 그래도 여전히 이런 마음으로 살아있노라고, 살아있겠다고 내게 보여주는 글을 쓸 뿐이다. 그것이 나를 주눅 들게 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 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 이런 삶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넬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나의 결핍이 아주 작아질 때까지.

슬퍼 보이는 게 아니라 행복해 보일 때까지.

성장을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그게, 내가 쓰는 글의 이유니까.


#사진은 오랜만에 달을 찍은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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