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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18. 2021

지혜를 주세요. (上)

회사에는 말하지 않고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면서 퇴사를 준비하던 때였다. 갑작스럽게 대학교 동기 오빠는 동기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슥 한마디 던졌다.


“소개팅 받을 사람? 크림아, 소개팅 받을래?”     


소개팅이라…. 소꿉놀이 사랑이 끝나고 난지도 돌아서고 보니 다섯 달째 되던 달이었다. 그러니까, 올해 6월쯤의 일이란 거다. 아예 생각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약간은 시큰거리기도 하고. 사람을 잊지도 못했고, 나를 돌보면서 이별이 준 깨달음을 몇 번이나 곱씹고 있는 내가 소개팅 받기엔 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은 좋아하지만 한 편으론 또 귀찮기도 했고. 곧 퇴사를 앞둔 내가 사람을 만나기엔 좀. 그래서 받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틀 뒤에 또 물었다.     


“그러지 말고 소개팅 한 번만 받아봐. 잘생겼어”    

 

잘생겼다고? 조금 솔깃했다. 남녀 불문하고 이쁘고 잘생긴 사람은 귀한데…. 생각도 채 하기 전에 동기 오빠는 받아온 사진도 보여줬다. 사진으론 얼마든지 사기 칠 순 있긴 한데. 에라, 모르겠다. 잘생긴 남자를 언제 만나보랴.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니 역시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덥석 그 한마디에 흔들릴 정도라면 아직 갈 길이 먼 어른이(어른 아이) 였던 거다.     


“그럼 뭐. 내 사진 건네줘 봐요. 반응 오면 해보지 뭐.”     


끈질긴 요구에 내키지 않지만, 맘에 들어하면 밥은 먹어볼게. 마치 도도한 사람이 된 것 마냥 굴어봤다. 인터넷에 많이 떠돌던 말이 있는데 아무리 내면이 예쁘고 잘 가꾸든 간에 외모 예선전에서 탈락하면 아무 의미 없다는 이야기.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에 들어 했지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 조금 마음 아프지만 어쩌겠는가? 예선 탈락이면 어쩔 수 없지.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던 오후 다섯 시쯤이었을 거다. 다시 연락이 왔다.     


“너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데? 상대 쪽에게 연락처 전달해줬어. 네가 바쁠 테니까, 한… 여덟 시쯤 연락하라고 했어.”  


미친 것 아닌가 싶었다.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 거 맞는가 싶어서 사진 몇 장을 더 던져줬다. 이래도 마음에 든대요?라고. 사실 외모에 자신이 없는 나는 예선전 탈락까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되다니.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든다며 증거자료로 카톡 대화창까지 보내주니 귀에 입 걸린 건 사실 비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사랑을 시작해봐도 되나? 마음이 흔들흔들했지만 즐거운 일이기 했다. 모르는 일이다. 밥 먹으러 나왔는데 의외로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잖아. 김칫국 마시지 말자. 하며 여덟 시가 훌쩍 넘긴 시간을 보며 핸드폰을 쳐다봤다.     

     

그리고 내 카톡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그 잘생겼다던 소개팅 남이자 전 남자 친구의 첫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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