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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Feb 05. 2022

밤은 넘어가고 나는 넘어가지 못했다.

새해가 시작되고 구정이 지나고 입춘이 돌아왔다. 나는 24절기를 잘 따지지 않지만 어머니가 종종 절기를 이야기할 때가 있어서 새 계절의 문턱이 올 때쯤에 종종 절기를 찾아보곤 한다. 봄의 문턱에 앉은 날. 나는 부산에 와 있다.


지금은 소주를 반잔을 걸쳤다. 부산의 꽃이라고 할 순 없지만 항상 먹고 싶었던 대선 소주를 먹으며 마음껏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무료함을 달랬다. 첫 잔은 씁쓸한 듯 달더니, 세 잔 반쯤에 와서야 달게 도는 술맛이 좋아서 한 병을 비울까 욕심을 냈지만 뚜껑을 닫았다. 알싸하게 도는 달은 맛을 느꼈으니 됐다.


부산을 오고 싶다고 3년을 이야기했다. 3년 전 혼자서 왔었는데, 그때에는 해운대를 보며 혼자 다닌다는 자신이 자랑스러워 많이 어깨가 으쓱하며 다녔던 기분이 새록 되살아난다. 지금은 자신이 자랑스럽다기보다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데도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퍽 좋아서 눈을 감았다. 마치 위스키를 처음 접한 알싸한 담백함이 밀려오는 기분이랄까.


심장이 파르르 떨리는 느낌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번 여행을 가면 무언가 마음속의 시원함을 느낄까 기대도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렇다 한들 슬프거나 싫지도 않다. 그저, 낯선 땅에 떨어져 가만히 이런 시간을 즐기는 것이 유의미 한가, 아닌가를 따져 보다 그저 빙그레 웃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가끔 모니터 앞에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면  비루한 삶을 사는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파괴적인 삶을 노래하는  같아서 금방 멈추곤 한다. 그런 생각보다는 내일을 노래하는 편이  낫다고 다짐하며 내가  자신에게 노력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그랬다. 약간의 무력감에 빠져 바깥에 나가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나에게 노력하며 외출 했다. , 이상한 노력이다.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녀의 팔레트, 에잇, 아이와 바다, 라일락, 에필로그 등을 들으며 나는 아직도 한참을 그 나이보다 더 뒤에 살고 있다고 새삼 실감했다. 그게 퍽 슬펐다. 열심히 감정의 어른이 되고자 덧댔던 마음들의 실패도 여실히 살피면서 나는 한참이나 가야 한다는 사실이 숨이 탁 막혔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올해 안에 라일락을 부를 수 있을까, 서른을 맞이할 때 에필로그를 노래할 수 있나. 이것도 강박일까, 다그침일까 모르겠다. 그저 조금 더 한 뼘 나아져서 빛나고 싶었던 건데. 아쉬움이 살짝 물든 밤이다.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 아직은 가지 않았으면 하기도. 얼른 지나가 여름을 맞이하고 싶은 기분이다. 내가 오늘 용궁사에서 빌은 소원이 이루어졌을지 알 수 있는 건 올해 말이라야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낯설지 않은 땅.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산의 밤.

기어코 너는 넘어가고 나는 넘지 못하는 밤인, 아주 아쉬운 2월의 어느 밤을 마무리한다.

만개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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