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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Mar 15. 2022

책임자가 되기 싫었던 나, 책임과 함께 서 있게 되다.

봄 비가 바람과 따갑게 찾아왔던 어제였다. 매주 돌아오는 월요일이면, 월요일이란 것이 싫어서 퇴근만을 목 앞에 두고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비보 하나를 듣게 된다.

    

퇴근 15분 전, 직속 상사인 과장님이 나를 부르시고는 회의실로 가자고 하셨다. 일을 더 달라고 했던 나의 바람이 통했던 걸까. 신제품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새로운 신제품을 촬영하기 위해, 촬영 기획안을 만들어 보라는 말과 함께 돌연 자신의 퇴사를 선언했다.     


아니, 통보였다. 이달 말까지 라는 통보.     


나는 놀라서 바로 과장님을 부르며 응시했지만, 갑작스러운 통보에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덤덤하게 나를 응시하던 과장님은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말만 내게 남긴 채, 남은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고 회의를 마쳤다.     


그때부터 나는 공포와 후회, 걱정, 우울함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번에도 기어코 혼자가 되는구나.     


회사를 입사하기로 결정한 후 인수인계를 받을 때 그때에도 세 명이 퇴사 예정이었다. 나는 마케팅부 소속인데, 마케팅부 소속의 팀장님. 그리고, 다른 팀의 소속의 한 사람, 임신으로 인한 퇴사를 맞이한 내 전임자 디자이너까지.     


걱정스러웠다.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을 같이 하던 시기였고 흔들릴 때였다. 그때 그 시기에 태양 언니, 에스프레소 어른, 마음으로 노래하는 어른, 친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나의 결정이 내려지기를 묵묵히 기다려 줬다. 덕분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다.     


퇴사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가장 두려워했던 혼자가 되는 것만 아니라면 다른 퇴사자가 있던 말든 무슨 대수냐며, 4개월을 달려왔다. 물론, 업무적인 스킬도 향상할 수 있겠다는 마음 가짐 하나로. 지금 여기에 존재했다.     


그래, 혼자가 되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 대수겠어.라는 마음으로 오늘 퇴사를 앞둔 다른 팀 과장님의 퇴사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벌써 다섯 명의 퇴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꽤 나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책임’에 대한 것에 대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이유는, 나는 늘 다니는 곳마다 가장 막내로 들어왔지만 총책임을 맡아야 했었다. 결정적일 때에는 회피하기 바빴던 팀장님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실랑이해야 했고, 틀리지 않기 위해서 예민하게 굴어야 했던 지난날들이 끔찍했다. 그러고도 수고했단 말 한마디를 듣지 못했던 것이 퍽 서러워 돌아가는 길에 울던 날도 있었다.   

   

물론, 백 프로 내가 다 옳았던 것도 아니었고, 틀렸던 적도 많았다. 틀린 것에 대한 감당도 마땅히 감수했지만,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를 면접 보면서 질문했던 것이 혹시 퇴사자가 더 있는지, 가르쳐 주는 사수는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꼭 물어보곤 했다. 더 이상 책임자로서 있기는 싫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상황을 견디고 싶지 않으면 도망가는 선택지를 선택하면 되는 상황이다. 온갖 것이 원망스러웠고, 걱정스러웠다. 만에 하나라도 잘 해내지 못하면, 채찍질을 당할까, 손가락질을 받게 될까 봐, 그리고 끝끝내 필요 없다며 내쳐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속마음을 아무리 털고, 털어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마치, 예견되어서 그렇게 되어버리면 어쩌지, 혹은 되고 말 거야. 같은 상상이 좀처럼 멈춰지지 않는다. 차라리, 더 나아가서 그냥 다른 곳을 알아볼 걸 그랬나의 후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런 걱정은 부질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늘 마음 병원 선생님께 이런 마음을 실토했더니 하시는 조언은 날카로웠고, 적당했다.     


떠나가는 그들의 빈자리를 내가 메꿔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빈자리가 쉽게 메꿔져서 잘 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직언. 즉, 잘못돼도 시스템의 잘못이지 나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  

   

자신에게 큰 책임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주어진 일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두 가지 조언을 남겨 주셨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걱정을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책임자로 있기는 싫었다. 즉.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책임을 덜 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책임을 덜 지고, 덜 무겁고, 덜 예민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가림막이 내게 좀 있었으면 했다.

왜 그럴까.

 가장의 무게도 지지 않는데, 사회의 책임 하나 지기도 싫어하는 것은 좀 창피해야 할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제는 더는 피할 수 없는 나이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마음들을 생각하고 생각하기를, 나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은 맞았다.

발을 뒤로 내딛어도 넘어지고, 앞으로 내딛어도 넘어지는 위치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노력해야 한다. 그것 말곤 현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결국, 또 노력이라는 친구를 불러와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마땅한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 이제는 물러날 길이 없다. 사회의 일원이 기꺼이 되고자 한다면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고도 문제가 일어나거든, 상상한 것들이 일어나거든, 마땅히 감내하는 것 말고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이 없다. 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에스프레소 어른 덕이다.     


어젯밤 에스프레소 어른의 방송에서도 그랬다. 때마침 비보를 들었던 저녁, 불안에 관련하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불안은 없앨 수 있는 요소인지 등, 다양한 관점을 이야기해주는 방송을 열어 주셨다.     

방송에서 얻은 팁은, 다섯 가지였다.

첫째, 소소한 행복을 많이 찾아가는 것.

둘째, 불완전한 것을 인정하는 것.

셋째, 잘하는 것에 초점을 두며, 완벽한 성향을 버리는 것.

넷째, 안 되는 것을 인정할 것.

다섯째,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고 행하지 않는 것.     


특히 불완전한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 와닿았다. 지금은 불안전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현실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자연스레 떠올린 것을 보면, 아마도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 또한 생각할 수 있었다.     


폭풍전야가 시작된 3월 중순. 나는 과연 3월 말에 어떤 표정으로 서 있을까.

굉장히 걱정스럽다. 노력, 노력, 또 노력, 이 친구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부디 울고 있지만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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