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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18. 2021

지혜를 주세요 (下)

     

“우리 생각할 시간을 좀 가져요.”    

 

그 말의 파장은 꽤 컸다고 볼 수도 있다. 그 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리 없는 그는 변명이 담긴 사과만을 계속 보내왔다. 물론 그 이야기에 대답하지 않았고 딱 한마디만 했다.


당신은 나를 배려하고 있지 않다.라고.     


아, 이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보란 뜻은 이런 의미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을 때 굉장히 왠지 모를 감정들이 밀려왔다. 연애를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는 점과, 과거의 나와도 마주친다는 것은 굉장히 껄끄러운 일이다. 그가 완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쉬웠고 아팠다. 내가 좋아했던 그 전의 사람에게도 이런 상처를 줬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실망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내 목소리와 말투. 저 아래로 가라앉고야 마는 상념. 좋아하는 마음보다는 조심스럽게 시작하고자 했었던 약간의 순정은 또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슬픔이 컸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후회가 적을 거라는 것. 상대의 진심이 무엇인지 보고 싶다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은 채 가만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보일 거라는. 풋내기 사랑에서 배운 걸로 알아가고자 했을 때,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그에게.     


그는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더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물어라도 볼 수 있는 사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마음들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답을 내리기 어려워 너구리에게 물으러 갔다. 지금의 상황과, 마음들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양쪽 입장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말했고 너구리에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네 남자 친구는 성실한 사람일 순 있지만…. 좋은 사람은 되지 못해.”     


그 후로는 생각이 훨씬 정리가 빨랐다. 성실한 사람은 나도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땐, 조금 부족해도 이겨나갈 사랑의 재료가 풍부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족한 마당에 더 사랑할 수 있는. 채워 넣을 수 있는 다른 재료가 부족하다면? 양쪽은 시너지를 낼 수가 없는 거다. 내가 그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나 또한 줄 수 있는 영향은 과거의 나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덧붙이기를.     


“네가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는 선택해야 해. ”     


어려운 선택이다. 그리움은 옅어졌다가 선명해졌고 마음은 기대했던 가치가 무너져 슬픔이 조금씩 찼다. 이 정도에 또 슬픔에 찼다는 것도 슬펐고, 앞으로도 또 하게 될 다른 문제들은 마음이 버겁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하자면 더 정이 들기 전에 정리하자는 결론이었다.     


지혜를 구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물을 수 없었다. 지혜를 많이 배운 사람이 부러웠다.

어떤 형태로든 모아둔 지혜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면.


어쩌면 서로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지혜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 그러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족해도 좋았고, 실수해도 좋았다.     

단지 네가 부족하다면 내가 조금 더 채우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걸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이제는 놓을 수밖에 없는 거지 하는 마음은 어떻게 해도 슬프다.

달콤하기만 한 사랑은 없고 지속성을 갖기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네가 조금 무섭다면 내가 먼저 용기를 내고.

너무 무서워서 겁이 나면 눈에 닿는 곳에 있어주겠노라 하고.

전부를 지킬 수 없어도 말로 뱉어낸 약속은 지키려 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립지만 그리워하지 말아야 했던.

그것이 나에게로 돌아와 그때의 진심을 지금 알게 됐을 때는 꽤 많이 외로웠다.     


아주 많이.     


그렇게 알아버린 진심은 다음 사람에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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