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소란함이 지나가고, 찬란함이 내려앉을 것 같은 여름의 입구 앞에 멀거니 서서 바람을 느낀다. 살짝 차갑다고 느끼는 온도로,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말한다.
아직은 봄 한 자락이 남아있다고.
바람결에 춤추며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그렇다고 대답해주는 듯하다.
후우.
폐 끝으로 전해져 오는 가벼운 한 숨에, 바스라져 버린 마음 조각들이 흩날린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두려움, 묻어 두었던 기억의 단편, 어딘가 멋대로 툭 끊긴 것들이다.
손 끝으로 뻗어 가만히 조각난 것들을 잡으면, 또 바스러지는 것이 결국 나를 어지럽힌다. 가만히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을 잊어버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겠다는,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던 작곡가님의 전화였다.
나는 그를 피아노 어른이라고 하겠다. 그가 피아노 치며 노래 불렀던 때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고민은 한 톨도 이야기 않고도 나눌 수 있는 마음도 있다는 것이 꽤 즐거웠다.
피아노 어른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가지고자 했던 것들,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모두 이루고 난 뒤의 결핍을 가진 상태였다. 경험이 많아서 생기는, 굵은 나이테의 대한 뻔한 지겨움 같은 것 같았다.
어떤 감정이 들지, 어떤 상황이 올 지, 어떤 경우의 수가 있을지 보인다고 했다. 실패의 수가 적어지니, 오히려 실패하면서 성취를 얻었던 그때가 좋았다고. 만족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도처에 있지만,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마음이 하나로 모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나는 그와 똑 닮은 고민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에 가깝다.
경험이 적어서 오는 얕은 나이테에 대한 불만, 작은 성공에 기쁨을 갖긴 하지만 만족은 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조금은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욕심이라고 정의했다.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을, 더 큰 만족으로 끌어안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사실 안타깝기도 했다. 만족하는 것에서 그칠 수 있었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이해받을 수도 있고, 이해받을 수 없는 영역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끊임없이 어떤 것은 만족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 두지 못하는 것을.
욕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을 더 큰 화로 만들지 않고,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슬기롭게 풀어나간다면 욕심은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때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는 것도 인정해줘야 한다.
욕심은 부려서 안 되는 것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인 것.
인정해 준다면 만족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욕심을 품고 산다.
우리는 그렇게 긴 통화를 마쳤다.
내일은 조금 더 인정하는 삶으로 살기를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