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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May 22. 2022

삶의 목적을 그려야 하는 이유

신문사를 홧김에 그만두고 난 후 나는 방황이 시작됐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쉬는 것에 더 집중을 하게 되었고, 생각은 저 밑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진심으로 애가 탔는지는 모르겠으나 눈물도 흘리면서.


“넌 네가 뭐가 부족해서 세상을 나가지 않는 거니? 넌 한 번도 세상과 진심으로 살아온 적 없어”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


오늘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부정의 언어를 꺼내어 긍정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나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대표적으로 결혼의 관한 이야기를 가장 싫어했다.

누군가 나에게 결혼을 재촉한 것도 아니고, 결혼에 대한 의사를 물은 것도 아니었다. 가까운 지인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종종 들을 때면 불편했다. 아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질투’ 했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불편하고, 어두운 것들을 언젠가 상대방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받아들여지기 않았을 때의 상처를 먼저 떠올렸다. 또, 한편으로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자포자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공존하며 존중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어 버렸다면 너와 나는 다름을 인정하고 만남을 이어가지 않으면 되는 것을 알았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여기던 것들을 이해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결혼의 이야기는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자주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말이 있다.


난 오래 살지 않을 거야.

짧고, 굵게 살다 갈 거야.


이 말은 언젠가 나의 생명을 스스로 꺼뜨릴 수도 있다는 말도 되기도 했고,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기 위한 말이었다.


최근, 아주 멋진 아트디렉터 친구에게 상담할 일이 있어 연락을 했다.


그와는 요즘 자주 소통하는 편이었다. 개인적인 취미를 교류하기도 하고,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는. 만날 일은 적지만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중 한 명이다.


내가 그에게 상담을 요구한 이유는 자기 계발에 관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입사한 지 6개월.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기뻐하기도 잠시였다.  

바쁜 건 아주 잠시의 일이고, 대체로 ‘한가하다’ 하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일이 없다.  

그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초조해지기도 하고, 더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헤매 하고자 하면 또 마음과 다른 결과물이 나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지?


이전에도 신문사를 다닐 때 같은 고민을 했다.

내가 디자이너로서 지금 일을 잘하고 있는 걸까?


그때 했던 고민을 똑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에스프레소 어른이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났다.

작년 겨울 , 커피 한잔을 하며 내게 건네 준 말은 ‘목표’ 보다 ‘목적’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목표는 이루면 잃어버리지만 목적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고민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그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돌아보니 목적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또 다시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알았다. ‘목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트디렉터 친구 또한 비슷한 답변을 주었다. 그가 내게 말해준 것은 ‘더 잘하고 싶다’는 고민은 잘하고 있는 것, 그러나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대한 방향성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기본을 탄탄히 한 상태에서, 자신의 색깔이 명확하다면 색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난 일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나를 알아가는 것이 행복했다.

내면의 문제를 사랑하지 않아도 덜 고민할 수 있는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는 외부의 문제를 고쳐나갈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입버릇처럼 죽음을 선호하는 말보다, 고민 위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는 일은 이제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잘리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를 잊은 채로 삶을 연명하기에 그만인 사람이 되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막아야 한다는 것을.


삶은 계속 이어진다.

언젠가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응원을 받는 삶보다, 웃음을 받는 삶을 사는 날이.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웃어 보일 수 있는 날이.


그러면, 꽃이 활짝 피겠지.

당신께 웃어 보일 날을 가슴에 묻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본다.


#photo #juhye_pic_

#사진은 마음이 예쁜 주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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