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
개와는 못 나눌 말이 없다.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속마음까지 나의 전부를 터놓을 수 있다.
무뚝뚝하기가 타고나 말수가 그리 많은 타입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개 앞에만 서면 무장해제가 되곤 한다.
처음 개와 살게 되었을 때만 해도 입에서 뱉어지는 건 죄다 딱딱한 것들뿐이었는데
어언지간 마음이 녹아서 그러는지 흐물흐물해진 말들이 내게서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있다.
수압이 너무 세 수도꼭지를 조금만 돌려도 콸콸 쏟아지는 물처럼.
꼼에게서 차오른 사랑은 굳게 잠가 놓았던 나의 마음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힘이 센 사랑이 콸콸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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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랑 지내다 보면 시답잖은 말들이 는다.
말도 안 되는 별별 이야기들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늘어놓을 수 있는 재주를 얻게 되었다.
꼼, 냉장고 열어서 블루베리 꺼내 먹어. 씻어놓은 거 있어.
꼼이 위장 문제를 겪은 후로는 먹던 간식을 모두 끊고 채소나 과일, 닭가슴살 등을 소량씩 주고 있는데
매번 몸을 일으켜 냉장고까지 가야 하는 게 적잖이 귀찮다.
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나서야 생각이 나는지.
이 밖에도 “꼼, 밖에 나갔다가 왔으면 옷이랑 하네스랑 제자리에 잘 걸어둬야지.”, “꼼, 장난감 좀 치워. 침대가 이게 뭐야.”, “꼼아, 저녁으로 된장찌개가 좋을까, 고추장찌개가 좋을까?” 같은 말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꼼을 향한다.
그럼 꼼은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마찬가지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
웡!
(장난감 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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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창의 싸움에서 오늘도 내가 졌다.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개와 보내는 일상에는 시시콜콜한 즐거움이 있다.
개는 등장만으로도 그곳이 어디든 낙원으로 만들어 버린다.
지루함은 잊은 지 오래,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꽤나 쏠쏠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요즘엔 안 그러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창밖 구경하는 재미에 들린 꼼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열린 창문 너머로 콧구멍을 벌렁거리곤 했다.
바람에 얻어맞으면서도 창문을 닫을 수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신호에 걸리면 창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여기는 어딘가, 산책하기 좋은 동네인가 살펴보는 게 우리만의 미션이었는데
이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우리를 알리는 작은 침입자가 등장했다.
어? 멍멍이다!
초록색의 무시무시한 공룡 옷을 입은 어린이였다.
나이는 대략 6-7세쯤. 어린 공룡의 외침에, 옆에 있던 어른 공룡들은 문제의 멍멍이를 찾기 위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숨을까 말까 고민하기에는 우리를 가리키는 손끝이 분명해 금세 모두에게 정체를 들키고야 말았다.
안녕?
공룡이 두 팔을 번쩍 들고 손을 흔들길래 나도 꼼의 손을 붙잡고 공룡에게 인사해 주었더니
꺄아아악!
어린 공룡은 두 다리를 펄쩍거리며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아했다.
쿵쿵- 소리가 아닌 뿅뿅- 소리가 어울릴만한 뜀이었다.
푸하하.
주위는 순식간에 웃음으로 가득했다.
거리에서, 차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우리를 감싸안았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우리 사이를 파고든 작은 침입자는 세상을 웃게 만들었고, 그 가운데 영문을 모르는 개가 있었다.
행복한 가운데는 늘 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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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우연한 만남 제조기다.
개가 아니었더라면 살면서 내가 만날 일이 있었을까 싶은 벌레부터,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쓰레기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다짜고짜 그들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아서 골치가 아프다.
다시는 보지 맙시다 하고 헤어져도 꼼은 다른 모습을 한 그들에게로 나를 불러낸다.
세상은 넓고, 넓은 만큼 뭐가 많다는 걸 억지로 배웠다.
우연히 만나는 것들 중에는 물론 좋은 것도 있다.
(공룡을 만난 것처럼.)
고집을 부리면서 동네 골목골목에 접어들길래 잔뜩 신경이 예민해진 날이었다.
자고로 길치란 애매하게 아는 곳에서 길을 잃으면 아예 모르는 곳보다 더 헤매는 법이어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뜬금없는 겹벚나무 한 그루가 담벼락 너머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본 겹벚꽃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본 겹벚꽃이 만개한 모습으로 담벼락을 타고 내게 범람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꼼은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게 뭐 대수냐는 태도에 사진 한 장 겨우 남기고서 꼼을 따라가는데, 머리 위로 흩날리는 꽃비에 그만 정신을 잃을 뻔했다.
여기가 낙원이구나.
꽃 사이를 가로지르며 내 마음속으로 꼼이 걸어 들어온 건 이번만이 아니다.
이름이 닮은 꼼은 꽃을 몰고 내게로 왔다.
한강 변을 걷다 제일 먼저 핀 개나리를 만나게 해 주었고, 우연히 들어간 카페 마당에는 데이지가 한가득 피어있었다.
계단 사이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작은 꽃과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민들레, 화단 구석에 핀 맥문동을 눈여겨보게 된 것도
자기 뒤만 따라오라며 나를 이끈 꼼 때문이었다.
꼼이 내게 준 꽃길이다.
/
개를 만나 나는 수시로 길을 확인하는 습관을 얻었다.
혼자 걷는 날에도 예외는 없다.
개들이 다니기에 위험한 건 없는지, 요즘 활동하는 벌레들의 근황과 땅의 상태까지
<안전제일 개 산책 협회>에서 나온 사람처럼 꼼꼼하게 확인을 한다.
딱히 그래야지 생각하지 않아도 위험한 유리 조각이 떨어져 있거나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튀어나와 있으면 걸음을 멈춰 정리하는 내가 가끔 의식이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스스로 머쓱한 감탄을 보낸다.
오, 나 꽤 괜찮은 반려인일지도. 집에 가서 꼼한테 자랑해야지.
한동안은 다른 개들의 배설물까지 치우기도 했다.
개들이 애먼 욕을 듣는 건 개들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자리를 뜬 사람들 때문이니까,
욕 한 소리라도 덜 들었으면 하는 패기로 시작한 일이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똑같은 모양의 신발이어도 남의 신발을 신으면 찝찝함이 온몸에 퍼지는 것처럼
이름 모를 개의 흔적을 치우고, 그걸 내내 들고 다녀야 하는 게 내겐 너무 곤욕이었다.
차라리 누군지도 모를 남의 신발을 신고 걷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같은 흔적이지만 내 개가 남긴 것과 다른 개가 남긴 것의 차이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극명한 것이었다.
내 개의 흔적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지만 다른 개의 흔적은 차마 주머니에 넣을 수 없다는 게 가장 컸다.
그러니 제발 좀 제때 치우시기를. 배변 봉투 무겁지 않잖아요.
어느 틈에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나는 옆에 개가 없어도 개 생각을 그만두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 한잔에도 개가 깃드는데 길 위에서는 곳곳이 무성했다.
인도의 폭이 넓으면 ‘오, 여기는 마주 오는 개들이 서로를 경계하지 않아도 되겠군.’ 만족하고,
얕은 풀숲을 보면 ‘음, 여기는 꼼이 한 10분은 머물겠군. 다음에 데려와야지.’ 미소를 띠고,
공원을 만나면 ‘아, 꼼이랑 같이 와야 했는데.’ 하며 땅을 치고 아쉬워한다.
특히 공원을 가로지를 때가 제일 아득하다.
공원 입구에 발을 붙이자마자 떠오르는 꼼 생각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지는데 공원에는 꼭 개가 있는 법이어서 꼼 생각 뒤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죄책감을 멈출 수가 없다.
온몸부터 시작해 온 마음마저 따끔거리는 게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꼼에게 전화를 걸어 이리로 나오라 하고 싶은 심정이다.
“꼼아, 저번에 같이 갔었던 분수 있던 공원 기억하지? 지금 거기로 와. 길 건널 때 조심하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내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 꼼이 몸을 한 번 털어주고 방에 들어가 옷을 챙겨 입고서는 하네스도 잊지 않고 몸에 맞게 단단히 찬 다음에 문을 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아니다, 그냥 집에 있어. 내가 갈게.
혼자 나와있으면 자연히 개가 마중 나오는 상상을 한다.
지금 이 문을 열면 꼼이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반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세상의 모든 문이 꼼에게로 향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상상은 매번 엘리베이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전에 끝나지만 말이다.
개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지만, 특히 퇴근길에 마중 나온 개는 그 어떤 때보다 더 반갑다.
어깨를 짓누르던 피곤함은 싹 사라지고 몇 시간이고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채워져 있다.
아마 내게도 꼬리가 있었다면 헬리콥터가 되어 날아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붕방 대는 개 옆에서 지지 않는 나를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더군다나 퇴근길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법.)
즐거우면 없던 힘도 생기기 마련이니까.
흥겨운 내가 없는 꼬리도 만들어다가 흔드는 편이라면, 흥겨운 꼼은 눈에 보이는 장난감을 입에 물고 상모돌리기를 한다.
물고 돌렸다 던졌다 물었다 돌렸다 날렸다 난리도 아니다.
한바탕 정신 사나운 퍼포먼스를 끝낸 꼼은 곧장 남아있는 여운을 날려 보내기 위한 우다다 쇼를 펼친다.
장난감이 반환점이라도 되는지 터치하고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터치하고 뛰어가고 은근슬쩍 나를 밟기도 하면서 혼을 쏙 빼놓는다.
꼼을 말리기 위해서는 달리는 속도가 느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점점 지치는 게 눈에 보일 때쯤 꼼을 진정시키면 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을 챱챱-챱챱챱-챱- 마시고 픽 쓰러져 눕는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꼼에게서 무언가 해낸 자의 뿌듯함이 느껴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해낸 모양이다.
아침에 눈을 떠 잠에 드는 순간까지, 아니 잠든 후에도 귀여움을 마구 발산하는 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장난감을 입에 물고 달려올 때가 미치도록 귀엽다.
잔뜩 신이 난 호흡과 통통거리는 발걸음으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하나를 고른 꼼이 입에 가득 물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근데 여기서 더 귀여운 건 꼼이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찾지 못했을 때다.
아무리 둘러봐도 마땅한 걸 찾지 못한 꼼이 행복만 한아름 물고서 내게로 뛰어오면 그대로 KO.
헤헤- 웃음을 정면에서 정통으로 맞은 나는 한동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
어떡할 거야. 책임져.
/
기분 좋은 꼼의 웃음은 나를 쓰러트리지만 머쓱한 꼼의 웃음은 나를 일으켜 세운다.
꼼에게 있어 머쓱한 웃음은 일종의 SOS다.
나는 못해. 근데 너는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도와줘.
꼼은 하수구 구멍을 무서워한다.
절벽 같은 계단도 도움닫기 없이 제자리 도약으로 뛰어오르면서 하수구 구멍은 영 안 되겠는지 나를 올려다보며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하수구 한 번, 나 한 번.
(너는 건널 수 있잖아. 나는 못해. 그러니까 도와줘.)
계단에서도 꼼의 머쓱함은 계속된다.
슬개골이 좋지 않은 꼼을 위해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안아주곤 하는데, 신이 난 꼼이 혼자 계단을 오르다가 말고 나를 올려다보며 웃으면 안아달라는 의미다.
헤-
(나 안 안아?)
꼼은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면 고개를 돌려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래도 내가 제일 미덥나 보다.
얼마 전 새로 생긴 공원으로 산책을 간 날이었다.
산책길도 넓고, 작지만 강아지 운동장도 있어서 꼼은 틈만 나면 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새로운 꽃들도 많이 심어놨길래 나들이 나온 기분으로 룰루랄라 걷는데 저 멀리 벤치 아래 누워있던 개가 꼼을 발견하고는 왕! 하고 짖었다.
소리의 세기나 몸의 움직임으로 보아 느낌상 우리를 반기는 것 같지는 않고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으름장 같았는데
꼼도 그걸 느꼈는지 아주 매끄러운 유턴 실력을 뽐냈다.
원래 그럴 계획이었다는 듯한 자연스러움에 하마터면 나도 깜빡 속을 뻔했다.
혹여 자존심이 상했을까 봐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데 꼼이 나를 올려다보며 헤- 웃음을 보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긴 모양이다.
잘했어. 원래 그렇게 사는 거야.
재빠른 처신술을 펼친 꼼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품에 안아 다독여주었다.
품에서 내려온 꼼의 발이 전보다 힘차 있어서 다행이었다.
공원은 넓으니까, 반대로 돌면 되지.
꼼이 내게 어떤 이유로든 몸을 맡기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온종일 시달려 녹초가 된 날에도 꼼만큼은 기꺼이 안아줄 수 있다.
원한다면 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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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는 모든 일상이 즐거움이 된다.
수줍기가 타고나 남들 앞에서는 점잖은 타입이지만 이상하게 개 앞에만 서면 무장해제가 되곤 한다.
이상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이상한 춤을 추는 게 당연한 사이가 되었다.
처음 개와 살게 되었을 때만 해도 내가 정해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차츰차츰 서로의 전부를 터놓아서 그러는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있는 그대로의 꼼 앞에 서 있다.
내가 나인 것, 꼼이 꼼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꼼과 내가 쌓아 올린 믿음이라는 돌탑은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콧방귀로 날려버릴 만큼 강했다.
웃고 장난치는 사이 돌 하나가 추가되고.
/
개랑 지내다 보면 시답잖은 웃음이 는다.
꼼, 누구한테 손을 주는 거야.
오늘만 해도 나를 앞에 두고 엄한 수박에 손을 주고 있는 꼼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웡!
(웃지 말고 수박 줘!)
수박을 샀더니 수박만 한 웃음이 굴러들어 왔다.
웃음 가운데는 늘 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