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브랜드로 3,000만원 날리며 얻은 것
회사를 그만뒀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나는 이 정도 실력이면 내 브랜드 하나쯤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패션 문화를 이해한다고 자부했고, 회사를 다닐수록 나만의 브랜드를 하고 싶은 열망은 커져갔다.
14개월 후 3,000만 원어치의 재고를 안고 브랜드를 접었다.
다음은 내가 놓친 것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글이다.
원단시장을 돌며 제품에 쓰일 것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패턴을 수정했다. 샘플을 제작하고 수차례 수정했다. 브랜드 컨셉을 잡고, 룩북도 촬영했다. 제대로된 제품 사진 하나를 위해 밤새 보정 작업을 했다.
8개월 동안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오직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에. 런칭 전날 밤, 인스타그램에 올린 제품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 퀄리티면 못해도 최소 월 300은 벌 수 있겠지."
첫 달 판매량, 12개.
생각보다 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제품 제작은 차치하고 재고 관리, SNS 운영 등등.
제품이 팔려서 다시 생산하는 데에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줄 몰랐다. 제품이 팔려도 제때 재 생산 제품이 나오지 못하면 다시 재고를 안게 됐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판매 페이지를 확인했다.
주문이 들어왔을까?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매주 월요일에는 주말 사이 얼마나 팔렸을까 마치 로또 당첨을 확인하듯 눈을 질끈 감고 판매 페이지를 켰다. 광고비를 쓰면 주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광고를 멈추면 뚝 끊겼다. 재고는 쌓여갔고, 통장 잔고는 줄어들었다. 그제야 모든게 이해됐다. 내가 디자이너로서 일하며 만났던 클라이언트들.
그들이 디자인 시안을 보면서 왜 "예쁘긴 한데..."에서 멈췄는지.
왜 내 작업이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불안해했는지.
그들도 나처럼, 매일 아침 판매 페이지를 보며 떨고 있었던 거다.
디자이너는 작업물을 넘기면 끝이다. 하지만 사업 대표는 그 디자인으로 팔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내가 직접 사업의 대표가 되어서야 비로소 느끼게 됐다.
돌이켜보니 대부분의 창업자가 똑같은 실수를 한다.
나도 그랬다.
잘될 것이라는 허황된 자신감과 꿈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비단 제품만이 아니다. 모든 것에 적용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브랜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나에게 수백, 수천 개의 질문을 했다.
이 원단이 나을까, 저 원단이 나을까?
핏을 더 타이트하게 가져갈까?
컬러를 몇 개나 출시할까?
하지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이걸 누가 살까?
왜 이걸 사야 할까?
어떻게 첫 고객을 만들까?
제품은 만들었다. 하지만 판매 방법은 만들지 않았다.
망했다고 써놓으니 너무 부정적인가?
나는 사실 망했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부정적 언어 입에 담기 금지.)
단지 제목에서 뭔가 임펙트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글을 끝까지 읽게 하려면 Chat GPT가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물론 제품이 전혀 팔리지 않은 건 아니다. 오프라인에 제품을 진열했고 다양한 채널에서 판매를 했으니 판매는 됐다. 하지만 목표했던 수익은 너무나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와 브랜드를 운영하던 운영진은 회의 끝에 여정의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브랜드를 정리하던 날, 창고에 쌓인 재고를 봤다.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지금 재고를 뺴지 않으면 창고 월세가 나갔다.
제품을 꾸역꾸역 창고에서 다 빼놓고 한동안 모든 작업을 멈췄다.
대신 한 가지만 했다. "어떻게 팔 것인가"를 배우는 것.
성공한 브랜드들이 첫 고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분석했다.
사람들이 왜 구매 버튼을 누르는지, 어디서 이탈하는지 공부했다.
설득하는 글쓰기를 배웠고, 이것이 어떤 문제 해결을 하는지에 대한 마케팅 방법에 대한 책들을 매일같이 읽고 익혔다.
그제서야 내가 디자인에 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보였다.
좋은 디자인은 예쁜 게 아니라, 작동하는 것이라는 것.
가끔은 작업을 하다보면 좀 더 실험적이었으면, 좀 더 아티스틱했으면 하고 욕심이 날때가 있다.
하지만 본질을 최우선으로 드러나게 한 뒤 클라이언트가 "매출이 늘었어요"라고 말할 때, 확신한다.
이게 진짜 디자이너의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직접 몸으로 부딪혔다. 실패해보았다. 재고를 안아봤다. 판매에 대한 고민으로 밤새 뒤척여봤다.
그래서 안다. 사업 대표가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길 때 느끼는 그 불안함을.
예쁘긴 한데 팔릴지 모르겠다는 그 떨림을. 이제 나는 그 불안을 함께 안고 간다.
디자인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업의 전체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팔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는 사람으로.
패션브랜드로 3,000만 원을 날렸다. 하지만 그게 내 인생 최고의 투자였다.
직접 경험해 봐야 아는 게 있다. "어떻게 팔 것인가"라는 질문이 디자인보다 먼저 와야 한다는 것.
이제 나는 그 경험을 무기로 작동하는 디자인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