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민 Nov 09. 2022

취향의 기분

아침에는 어떤 문장을 먹어볼까
책장을 넘기며 입맛이 당기는 페이지를 찾는다

싱싱한 샐러드 같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국물이 찰랑거리는 페이지에서 멈춘다

문장이 국수가닥처럼 딸려 올라온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만큼 국수가닥을 끊지 않고 씹는다

쉽고 빠르게 입안으로 들어왔다가
촉촉함에 쉽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먹기 쉽고 간편한 만큼 오래 씹을 필요 없는,
그런 문장도 좋았지만 애정의 기분이 되지는 않았다

디저트로는 니체 한 문장을 씹어 먹는다
오래도록 음미하지 않으면 목에 걸리고 마는,

나는 잘 읽히지 않는 사람이길 바랬는데
쉽게 읽히는 사람이었고

책장 속에 꽂혀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먼지만 한 움큼 안고서

누구라도 좋으니 나를 찾아주길 바랬지만

질긴 문장이든
부드러운 문장이든

취향만큼
맛있게 먹어줄 수 있는 기분이 중요했다

오후에는 오후의 기분이 있었고

선택받는 기쁨도
선택받지 못한 공허함도
오후의 기분이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먼지 쌓인 기분이 취향처럼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리는 바람을 기다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