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과 남편의 코로나 확진, 아들의 연이은 독감 판정으로, 지쳐버린 나는 '시'로 시작되는 어떠한 활동도 일부러 회피하고 있었다. 피곤했다. 무언가를 붙잡든 몸을 이끌 상태가 아니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은 참 빨리 흘렀고, 올 한 해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부분을 보아도 전체를 보아도 시간은 참 빨리 흘렀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아쉬운 감정을 내 몫으로 내버려 둔 채로.
찾아보니 올해 3월 30일이었다. 합평 모임에 처음 참석한 날, 창작 시 2편을 써서 신규 회원으로 참석했다. '시'의 '시'자도 모르던 때였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그때는 시 쓰는 일이 참 쉬웠다.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옮겨 적기만 하면 시가 되던 때. 그때 당시의 시 한 편을 위에 적어 보았다. 스스로 알에서 막 깨어 나온 병아리라고 생각하던 시절답게, 8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 다시 보니 뭔가 귀여운 느낌이 든다. 시에서 병아리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시 소재도 마침 계란에 관련된 것이었고.
오래된 추억 사진을 다시 꺼내 봤다가, 내게 이런 시절이 있었나 싶어 낯간지러워지는 기분. 시를 보고 있자니 그런 기분에 빠져들었다. 나의 한 순간을 찰칵하고 찍어 놓은 것 같은. 아무래도 그 순간 나는 포즈를 취했다가 민망해서 포즈를 풀며 다시 어떤 포즈를 취할까 하는 그런 엉성한 상태에서 사진이 찍혔을 것이고, 그래서 표정도 활짝 웃는 것도 아니고 안 웃는 것도 아닌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다시 시집을 펼쳐서 시를 읽고 시를 다시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시 속에 엉성한 포즈로 남아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을 위해서라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것 같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미숙한 것이 당연하게 인정될 수 있는 건 '처음'이 가진 매력이다. '처음' 앞에서 잔뜩 겁을 먹고 긴장하던 어렸던 나는 점점 '처음'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또, 다음 해의 '처음'이 다가오고 있다. 온갖 다짐들로 시작될 한 해. 그저, 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건강, 그리고 편하고 재미있게 시를 썼으면 하는 바람. 미숙했던 한 해를 보내고 나면 조금은 성숙한 한 해가 찾아오리라는 희망. 어제 보다 조금 성장한 나를 만나게 되기를. 나의 최대 라이벌은 어제의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