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어려움(1)

by 하민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무리한 때문이었고 미련한 때문이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바쁜 날이었다. 오전부터 저녁시간까지 바깥일을 보고 돌아온 날, 나는 피곤에 지쳐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눈은 맹목적으로 텔레비전을 향해 있었고 몸은 오른쪽으로 돌아 누운 상태였다. 아무리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지만 이렇게 피곤하다니 말이 되나 싶었는데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며 통증도 있는 것 같아 왼손을 목에 가져갔을 때였다. 뭔가 묵직한 혹이 만져졌다. 일순, 머릿속이 감전된 듯 새하얗게 변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혼자만의 기분일 거라고 위안하기 위해 별거 아니라는 말을 듣기 위해 목 아래쪽 부근에 커다랗게 만져지는 혹을 쓰다듬으며 남편에게 일부러 웃음을 가장한 뒤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 죽을병 걸렸나 봐. 목에 혹이 만져져."

그렇게 말을 훅 뱉어버리고 나니 말의 익살에 묻혀 진짜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진짜 웃음도 났다. 남편에게서는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왔다. 별일 아닐 거라는 표정과 함께 월요일에 이비인후과에 가보라는 짧고 간결한 대답이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이미 병원들은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나도 목감기겠거니 하고 말았다.

사실 목이 아픈 건 한 달도 더 지난 거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환절기라 목감기가 오나보다 하며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했었다. 열이 나지 않았으므로 코로나19는 정말 아닌 것 같았고 -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 열이 나는 증상에 대한 공포는 있었지만 열이 나지 않는 증상은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 그러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아프다고 느껴진 날은 약국에서 흔히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목감기약 두 알을 물과 함께 삼켰을 뿐이었다. 목감기약을 먹어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통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고 혼자서 생각했다. '운동할 때 목에 잘못 힘을 준 것이 틀림없어. 트레이너 선생님께 여쭤봐야겠어.'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의사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혼자 진단하고 혼자 처방하는 병원 놀이에 푹 빠져있던 한 달이었다. 나는 좀 그런 편이었다.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웬만하면 정신력으로 이겨내 버리는 좋게 말하면 참을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이제 지나고 나니 미련한 사람이었다는 나쁘게 말하는 평가 쪽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이비인후과에 갔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는 혀가 뽑히는 고통을 참아가며 진료를 받았다. 그래도 부족하셨는지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기 때문에 그때부터 마음속에서는 '어라?' 하는 당혹스러움의 의문부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후염이에요.", "목감기예요.", "한 삼 일분 약 처방해 드릴게요.", 같은 진료의 마지막에 응당 들었어야 할 내 머릿속의 예상 답안지는 보기 좋게 비켜가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좋지 않은 걸까? 초음파를 하는 도중 선생님은 자주 화면을 캡처하시는 거 같았다.

"갑상선염 같은데, 저희 쪽에서는 약 처방을 해드릴 수 없으니 내과가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 보세요."

아, 대답은 계속 내 예상을 거스르는 쪽으로만 흘렀다. 나는 목에 묻은 끈적거리는 약품을 닦으며 마지막 구원이 될 질문을 던졌다.

"심각한 건 아니죠? 선생님?"

"네. 그럼요. 약만 먹으면 낫는 병이에요."

나는 마침내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는 데 성공했고 또 다른 병원을 가야 한다는 번거로움만을 마음 가득 느끼며 초음파 결과지를 받아 들고 서둘러 내과로 향했다. 가볍게 병원에 들렀다가 원래의 스케줄대로 운동을 갈 예정이었던지라 나는 레깅스에 반팔 운동복 차림이었다. 내과는 제법 큰 대로까지 나가야 했기에 옷차림이 살짝 신경 쓰였지만 나는 빨리 이 일을 일단락 짓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대로 병원으로 향했다.


내과의 긴 대기시간 끝에 나는 또 초음파실에 누워야 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초음파 영상 대신 초음파 결과지를 출력해 주었고 그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므로 초음파를 다시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확히 안다고 하니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목의 초음파를 보기 위해 머리를 뒤로 꺾은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뭔가를 발견한 듯 바쁜 손놀림이 이어졌고 나는 다시 의사 선생님 앞으로 인도되었다. 선생님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갑상선암일 확률이 아주 높아요. 제가 볼 때는 거의 확실해요. 조직검사를 꼭 받아봐야 해요. 저희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아보실래요? 아니면 상급병원으로 가실 건가요?"

의사 선생님은 난이도 '하'의 퀴즈문제를 내놓고 50% 확률이니 쉽지 않냐는 표정으로 빨리 Yes 나 No를 선택하라고 다그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갑상선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난 살짝 멍해졌고 거기서 미쳐 헤어 나오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나는 나의 증상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서인가 라는 생각에 마지막 희망이라도 걸어 보고 싶은 마음에 목에 혹이 만져지고 만지면 통증도 있다는 말을 전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또다시 선택지에 대한 확신을 더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급성일 수도 있어요."

나는 좀 아득해졌다. 갑상선암에 대해서는 좀 아는 바가 있었다. 여성들이 흔히 많이 걸리는 질환이라는 것. 간단하게 수술하면 제거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까지 과잉 수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선택지 앞에 놓여 있었다.

"선생님, 그러면 여기서 조직 검사를 받고 암이라고 밝혀지면 여기서 수술도 가능한가요?"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어 적재적소의 질문을 간신히 찾아내었다. 선생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수술은 상급병원에서 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그것이 다 였다. 질문도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었고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방을 나와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의 행동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왜 아니겠는가. 아무리 간단한 암이라도 암은 암이지 않던가. 그리고 확신에 찬 선생님의 태도. 나는 그 순간 이미 암환자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전화할 기운이 없어 톡을 보냈다. 마침 휴가였던 남편은 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착한 암 이래."

남편의 첫마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좋다고 느꼈다. 그 말은 곧바로 내게 평안함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잘 걷기가 힘든 상태에서 남편이 차를 몰고 와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래서 결혼이란 것을 하나 보다. 남편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별별 생각들이 다 지나갔다. 남편은 멍해진 나 대신 선생님의 선택지에 대한 답을 골라주기까지 하였다. 만약 조직검사 결과가 암이라고 나오면 수술도 받아야 할 텐데 차라리 조직 검사부터 상급병원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굉장히 이성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좀 전의 진료실에서 그런 이성적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맞아, 오늘 초음파 검사를 두 번 받은 것처럼 조직검사를 두 번 받게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함께 점심밥을 먹고 상급 병원 제출용 초음파 CD를 받기 위해 다시 내과를 방문하는 것으로 그날의 여정은 끝이 났다. 좀 전에 진료실에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한 덕분으로 초음파 CD를 받기까지 또 한참의 대기줄을 견뎌내야 했다. 선생님의 간결한 선택지는 결과적으로 하나도 간결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급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면 바로 통 튀어나올 것 같았던 초음파 CD 조차 선생님의 지시가 내려져야만 하기에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대기줄로 미뤄졌어야 했으니 말이다. 내 머릿속에서 나는 이미 암환자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굉장히 의연한 상태였다. 남편의 '착한 암'이라는 말이 안드로메다로 갔던 나의 정신을 붙들어주었다. 모든 것이 차분했고 웃음도 났다. 별거 아니다. 아니었다.


한편으로 그날 무리하지만 않았다면 목이 붓지도 않고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덕분에 일찍 발견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의 미련함 때문에'에 이르렀다. 어떻게 한 달 동안 목이 아팠으면서 손으로 목을 만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한 번이라도 만져 보았다면 이렇게 커진 상태의 혹 이전 상태를 발견했을 테고 좀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대수롭지 않은 병명을 받아 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난 일을 후회하고 원인을 밝히는 일 따위가 현재 상태에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이러한 생각들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거 같았지만 사실은 별거였던 것 같다. 그러니 내 머릿속이 이런 생각들로 꽉 차 있었던 게 아닐까.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