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금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어려움(2)
- 나 목이 아파서 병원 왔는데 초음파 검사받으라고 하네. 진료 시간 길어질 듯해서 오늘 운동은 못 갈 거 같아.
- 그래요? 이따 결과 알려줘요.
아침에 이비인후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들어가며 나는 함께 운동을 하던 동생에게 톡을 보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이런 복잡한 감정에 빠져 있을 거란 예상은 조금도 하지 못한 채였다. 집에 돌아와 답변을 하려고 하니 뭐라고 남겨야 할지 망설여졌다. 솔직하게 말하자니 너무 놀랄 거 같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금방 들통날 말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숨기려 해도 얼굴에 표가 나는 사람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병원에 가느라 운동을 못 가게 되었다고 깔끔하게 톡을 남기는 건데 그랬다며 살짝 후회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 이를 줄 미리 알았던가? 어떤 답변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다시 톡이 왔다. 다시 한번 결과를 요구하는 톡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별거 아닌 기분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단단히 장착하고 사실대로 톡을 보냈다. 글에는 나의 별거 아닌 기분이 전혀 담기지 못했는지 동생의 놀란 마음이 가득 담긴 말들이 전달되어 왔고 내일 꼭 얼굴 보자는 말을 강조하고서 우리의 글 대화는 끝이 났다. 글은 무엇인가를 가려주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빠뜨리기도 하는 것 같다.
다음날, 카페에서 나는 전날의 이야기를 동생에게 자세히 들려주었다.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이런 것쯤은 정신력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으면 하나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믿었고 설사 최악의 경우 암이라 하더라도 완치되는 암이라고 하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저 나한테는 매듭짓지 못한 사건으로 인한 불편함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해도 좋았다. 이미 암환자라고 명명되었음에도 편안히 웃으며 얘기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돌아왔는데 목에 이물감이 심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손으로 만지면 통증이 심했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 입맛이 하나도 없어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기운은 없는데 밥을 먹지 못하니 몸이 축 늘어졌다. 억지로 밥을 입안에 넣어 밥을 삼키는데 그새 또 혹이 커진 건지 밥알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나는 기운을 내기 위해 밥을 억지로 입에 넣고 씹는 행위를 이어나갔다. 밥을 먹는 것이 살기 위한 수단이 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흔히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는 농담 섞인 말을 한다. 나는 그 순간 뭐라고 답했던가? 어떤 선택지도 별로 탐탁지는 않았지만 살기 위해 먹는다를 택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꽤 잘 먹는 사람이었다. 뭐든 복스럽게 먹었다.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 난 비위가 꽤 약한 사람에 속했는데 해조류의 비릿한 바다내음이나 고기 비계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접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임신한 사람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 성인이 되고부터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도전해서 먹다 보니 웬만한 마니아 음식들을 제외하고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먹는다는 행위는 나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기분이 안 좋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나는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었다 - 그땐 그랬다. 친구들은 질투심 어린 말들을 던지며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뷔페식 식당을 나오며 친구들은 배를 뚜들겨댔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찢어질 거 같다고도 했다. 그 순간 나도 배가 불렀지만 배가 찢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속으로만 생각을 했다. 식당을 나와 수다를 떨기 위해 2차로 간 카페에서 하나도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나만의 후식 타임도 즐겼다. 신기하게 음식을 보면 딱 그만큼이 위에서 비워져 있었다. 언젠가 뭐 방송에서 잘 먹는 연예인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크게 공감했다.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위가 그만큼 비워져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며 다들 그렇지 않으냐고 그는 반문했었다. 나 또한 '나는 아직도 먹을 수 있다', 의 상태를 매번 갱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 더불어 특별히 맛있지 않아도 맛있게 먹는 능력, 즉 보통의 입맛을 가진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게다가 음식 앞에서 더 이상 비위 상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되었다 - 이건 체질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력으로 된 것인지 성인이 되자 저절로 바뀐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크면서 비위가 좋아진 것은 내 삶을 분명 풍요롭게 바꾸어 놓았다.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 먹어본 삼겹살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았고 흐물흐물하고 물컹해 보이는 신선한 회가 쫄깃쫄깃하게 느껴지며 맛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좋았다. 나는 당연히 먹기 위해 산다 쪽에 끌렸다. 먹는 즐거움도 내 삶 속에서는 하나의 큰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살기 위해 먹는다는 문장 속에 내포된 절박함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피곤하다는 느낌을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대화의 자리에서 피곤하다는 말을 꺼내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피곤하다는 말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래, 다들 피곤하구나. 나는 나의 피곤함이 그저 나이가 들어서 오는 피곤함 정도로 이해했다. 피곤할수록 더 열심히 운동을 갔고 열심히 걷고 움직였다. 그런데, 그 피곤하다는 느낌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피곤함으로 인식된 것은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부터였다. 오전에 운동을 다녀오고 나서 나는 오후 내내 뻗어 있었다. 몸이 물 먹은 스펀지처럼 축 늘어졌다. 너무 피곤해서 딱 잠이 들면 좋을 상태였는데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낮잠에 잘 빠져들지 못하는 체질이다. 머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잠이 든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본다. 진심 부럽다. 밤에 잠이 들 때도 나는 나의 루틴들을 수행해야만 잠에 들 수 있다. 차분하게 잠자리에 들어가는 의식. 밤에도 그럴진대 낮이야 오죽하랴. 쇳덩이가 짓누르는 듯한 피곤함과 함께 찾아온 가슴 두근거림은 더더욱 잠들지 못하는 상태로 이끌고 있었다. 나는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두근거림 때문에 불안감이 찾아오고 있었다. 불안하니까 두근거리는 것과는 반대 현상이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셨으니 카페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늘 커피 한잔은 기본이었기 때문에 커피 때문에 두근거림이 심해진 것에 대해서도 '나이가 들어서인가?'의 잣대를 또 들이대려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조직검사 이야기만 했지, 약을 처방해 주지는 않았으므로 갑자기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충 피곤에 파묻혀 있던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자 후들거리는 몸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점심보다는 좀 밥이 넘어가는 편이어서 밥을 먹고 났지만 몸에 힘이 생기지는 않았다. 피곤의 이유가 아침에 운동을 하고 점심에 밥을 잘 못 먹은 탓이라면 저녁에 밥을 먹었으니 몸에 기운이 좀 나야 정상인 것 같은데 몸은 일절 나의 통제를 거부한다는 듯이 방전된 배터리는 충전될 줄을 몰랐다.
밤이 찾아왔고. 밤은 좀 어떤 이에게는 위험한 시간이었다. 밤은 휴식의 시간이면서 새로운 창조의 시간이면서 또 한편으로 허튼짓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낮에 떠있던 찬란한 태양빛이 잡고 있던 이성의 끈도 조금은 느슨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폭풍 검색의 길에 잘못 들어서고 말았다. 처음에는 분명 몸 상태가 왜 이런지 찾고자 하는 이성의 부름에 응당 몸이 움직인 것이었는데, 점차 나는 이성의 끈을 놓고 감정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게 되었다. 검색어로 '갑상선암'을 입력했을 때의 일이었다. 검색어로 '갑상선염'을 입력했다면 그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검색된 결과들을 보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 수술하면 완치되는 병이니까 괜찮아.' 그런 생각을 하며 창을 닫으려던 나는 페이지 제일 하단에 있던 누르지 말았어야 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누르고 말았던 것이다.
- 혹이 점점 커지는 증상.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
분명 앞의 설명에서는 보지 못했던, 쇳덩이 같았던 피로감도 확 던져버리게 할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갑상선암 중에도 완치되지 않는 암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니. 게다가 혹이 커지는 증상은 바로 나의 증상이었다. 앞의 검색들에서 찾아본 바로는 일반적인 암인 경우 혹이 자라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는데. 안 그래도 낮부터 진정이 안 되던 심장이 더 크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심장 소리가 대포 소리처럼 크고 빠르게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아닐 거라는 생각에 집중했다. 그것은 굉장히 희박한 확률이었으므로 나의 경우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을 터였다.
남편에게 달려가 검색창을 보여주면서 무작정 외쳤다.
"이거 아니라고 말해줘. 빨리. 괜찮다고 말해줘. 얼른."
나는 말의 힘에 또 한 번 기대고 싶었다. 아무리 혼자서 아니라고 되뇌어도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선 생각은 이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앞으로만 뻗어나가려 할 뿐이었다. 잘못된 생각은 감정을 흔들었고 나의 이성은 멀리 떠나 버렸던 것이다.
남편은 웃으면서 왜 이런 걸 찾아봤냐고, 괜찮다고 여러 번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해 주었다.
"진짜? 정말이지?"
당연한 걸 물어 뭐하냐는 남편의 표정에서, 괜찮다는 말의 힘이 조금은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웠고 조금 돌아온 이성이 내 감정을 진정시켜주길 바랬다.
밤은 길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에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대포알이 발사되는 것 같던 심장 소리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로 줄어들어 있었지만, 소리는 데시벨을 낮추었을 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잠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 수가 없지만, 긴긴 불안함 끝에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잠이 든 것 같았다 - 얼핏, 창문 밖으로 환해지는 기색을 느꼈다. 나는 잠 못 드는 내내 그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왜 쏟아진 물은 주어 담을 수가 없는가? 쏟아진 물을 박박 닦아내고 다시 컵에 물을 따라도 컵의 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컵의 물은 새로운 물이 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물이 예전의 물이 되도록 하는 마법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그 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음에도 이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