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 문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어려움(3)
빈속에 무작정 집에서 나왔다가 카페에 들어섰다. 무인계산대 앞에서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고 서 있었다.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마음은 '딸기 요거트'에 끌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딸기 요거트'를 시키라는 명령어와 함께 프롬프트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요거트만은 잘 먹었던 경험이 요거트 메뉴로 끌리게 하고 있음을 알았다. 어제도 카페에 갔다가 마음에서 끌리는 직감대로 요거트를 선택했는데 잘 맞았던 것이었다. 카페에 가면 늘 커피 종류만 시켜 먹었던지라 커피 메뉴를 배제시키고 메뉴를 고르려 하자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엔터 키만 누르면 되는 상황에서 전에 지인이 말해 주었던 '달달이 미숫가루' 메뉴가 갑자기 떠올랐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어제도 거의 먹은 것도 없는데 빈속이니 곡물을 좀 채워줘야 할 것 아니냐는 합리적 발언대로 나를 끌고 갔다. 경험을 따르느냐 합리적 이성을 따르느냐, 나는 한 동안 키오스크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장고에 악수를 둔다고 했던가. 직관을 따를 때가 더 좋았던 경험이 많았음에도 합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이성을 이기기가 힘이 든다. 나의 경우 오래 생각할수록 이성이 이기고 마는 것이다. 예상대로 난 미숫가루 메뉴를 시켰고 처음 한 모금을 마신 뒤 한 모금을 더 시도했지만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속에서 받지 않는 느낌과 역한 기운 때문에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마치 임신했을 때의 입덧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
나의 입덧은 냄새에 의한 것이었는데 냉장고 냄새, 밥 냄새를 맡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조리 과정에서 날 수밖에 없는 과정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물론, 완성된 음식이라고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해도 조리 과정 상태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직접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요리를 하고 있는 공간에 조차 머무를 수가 없었다. 가까이 살던 친구는 입덧이 심한 나한테 뭐라도 해먹이고 싶어서 요리를 해주겠다며 집으로 초대했는데, 나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밖으로 한참을 나가 있다가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에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 보다 더욱 기운이 없었다. 입맛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기운을 차리고 싶어 서둘러 무언가를 먹고 보아도 속에서 잘 받지 않아 삼키기 조차 어려웠고 먹게 되더라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병원에 갔다 온 뒤로 약 일주일 동안을 거의 국에 말은 약간의 밥알을 먹은 것으로 버티었다. 정신과 몸이 한순간에 피폐한 상태로 떨어지고 말았다. 과도한 걱정과 불안이 몸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럴 때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검색 실수가 낳은 불안과 암에 대한 의사 선생님의 확신의 말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기에 이렇게 무너지는 나 자신이 정말 싫었다. 암이라면 증상이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심각할 정도의 증상이 온다는 건 순전히 심리적인 요인일 거라 생각하며 나약한 나 자신을 탓했다.
상급 병원에서 선생님은 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혹의 크기가 2센티미터가 넘을 경우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 건 맞아요. 조직검사를 하면 10명에 1명 꼴로 암 진단이 나오는데, 암이라고 하더라도 완치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혹 모양도 특이하지는 않네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안정을 찾아가는 것을 느꼈다. 주책맞게도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당황스러웠지만 반가운 소리였다. 드디어 위가 소화활동을 시작한 신호였다.
동네 병원에서는 '암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게 차분하게 사실만을 설명해 주고 계신 것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완전히 배제하고서. 특이하지 않다는 말은 내가 검색에서 찾아보았던 희귀한 케이스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어서 나는 더욱 안심이 되었다. 밥 먹기가 힘들고 미열도 있으며 두근거리는 증상이 있고 기운도 없다고 현재 증상을 설명하니, 의사 선생님은 염증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며 타이레놀을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너무나 간단한 처방이었다. '아, 타이레놀만 먹으면 되는구나. 왜 이전의 병원에서는 내 증상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을까. 난 분명 증상을 설명했는데 약을 처방해주기는 커녕 어떤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고 오로지 암의 가능성에 대해서만 얘기하느라 그 때문에 나는 상급 병원에 오게 되기까지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구나.'
상급 병원에 다녀온 뒤로 증상이 좋지 않을 때마다 타이레놀을 먹었고 먹고 나면 열이 떨어지면서 조금은 견딜만하게 되었다. 여전히 입맛이 없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은 하였던 것이다. 진작, 타이레놀을 먹었더라면 몸의 증상이 조금은 견딜만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검색 때문에 알게 된 정보로 인한 불안감도 전혀 나와 상관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고 조직검사 날짜가 한참 뒤로 잡혔으므로, 여전히 많은 날들을 암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속에 지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병원을 다녀오고 달라진 점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10분의 1 확률에 대해 얘기했고 100% 완치를 얘기했기 때문에 조직 검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10분의 1 확률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 머릿속의 생각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10분의 1 확률이 내가 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 지금 그 이후의 일을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잖아?'
'암일 확률이 높다', 는 말과 '암일 확률이 10분의 1이다', 라는 말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자의 말은 나를 이미 암환자라는 가정 속에 빠뜨렸고 내가 하게 되는 생각들은 모두 암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후자의 말은 암일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게다가, 선생님의 평온한 표정이 한몫을 한 것도 분명하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도 여전히 가슴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 멈출 때도 있었지만 다시 심하게 두근거리곤 했다. 나는 이 증상을 불안 때문이라고 규정했고 그로 인해 이 증상은 나의 정신력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암'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휘청이는 내가 얼마나 나약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나는 그 때문에 사람들도 만나기가 싫어졌다(명확한 것도 이해시키려면 힘이 드는데 지금의 내 상황처럼 하나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이해시킬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기운 없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급격하게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은 내 정신력의 문제 때문이라고. 암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찾아보고 그 때문에 불안해하는 때문이라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결론을 믿어버리고 좌절한 때문이라고.
아직, 병명이 명확히 내려진 것은 없었지만 나는 분명 아픈 상태가 맞았다. 염증 때문에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나의 정신력을 탓하는 따위의 행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근거림은 그저 하나의 증상이었다. 그러나, 이 증상이 무서운 것은 몸이 먼저인지, 정신이 먼저인지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 있겠다. 몸에서 먼저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도 마음은 이것을 불안으로 인지한다. 머릿속에서 불안한 생각이 떠올라도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면서 불안해지는 상태에 빠진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증상 앞에서 이런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동네 내과 병원에서 처음 '암일 확률이 높다'라는 말을 듣고도 의연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때가 나의 증상이 발현되는 시초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심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 몸의 신호를 무시해 버리는 편이어서 꽤 오래전부터 가슴 두근거림 때문에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았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갱년기가 일찍 왔나 보다, 고 우스개 소리로 넘긴 적도 있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어느 날 저녁에 혹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나는 병원에 갔다. 그리고, 듣게 된 말이었다. 물론,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조금 놀랐던 건 사실이지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무시무시한 정보. 그건, 분명 나를 불안에 빠뜨리긴 했다. 그 정보는 암을 전제로 했을 때 내 증상과 너무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암은 증상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증상이 있었고 암을 전제로 했을 때 처음 병원에 다녀온 날 뒤로 증상은 더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생긴 불안한 마음은 몸의 증상 중 하나인 가슴 두근거림에 더 박차를 가하게 했다. 그로 인해 나는 심한 불안증에 시달렸고 그 원인은 모두 나의 정신력 때문인 것 같았다. 불안은 한 덩이가 되어 정신의 원인 때문인지 몸의 원인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 방문했던 병원에서 나의 염증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면, 아니 염증이 있다는 언급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나는 나의 몸 상태를 염증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는 지금 아픈 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비슷한 말 같아도 말의 간극은 꽤나 컸던 것이다. '말 하나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은 결코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냥 아파도 힘들었을 것을, 괜히 더 아프고 힘들게 지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억울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것은 나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가장 믿어주어야 했던 내가 스스로를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정신력 문제로 치부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억울함보다 미안함이 컸다. 그리고,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 때문에 몸이 아픈 게 아니라 그냥 몸이 아픈 것이다. 처음이라 알지 못하여 발생한 오해로부터 벗어나자 이제는 나의 증상들을 그저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그냥 아픈 것이었다. 왜 이 사실이 이토록 중요한지 나도 아프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