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필요해

나를 잡아준 글쓰기

by 하민

가슴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열은 곧 떨어지고 몸 상태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두근거림은 마치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방문객처럼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상급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쉬어야 한다, 고 하셨는데 나는 쉬어지지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쉬어지지도 않았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 읽기도 어려워졌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한창, 열심히 하고 있던 경제 관련 공부도 손을 놓게 되었다. 경제를 처음 공부하게 되면서 시야가 열리고 세상이 보이던 그 희열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작만 한 채로 중단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몸의 명령을 따라야 할 때였다. 슬펐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나에게 이런 시간은 너무 이르게 찾아온 불청객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쉬는 것도 아니고 안 쉬는 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냥 맘 편히 쉬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브런치 북 공모전>을 보게 된다. 작가 신청은 하지도 않은 채, 오랫동안 작가의 서랍에 글만 쌓아오고 있던 때였다. 발행을 하지 않은 오랜 글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수북이 쌓인 먼지들 속에서 빛을 잃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끄적이고는 있었지만 그것 또한 곧 먼지 속에 파묻힐 운명 속에 있는 글이어서 글은 생기를 잃고 방향을 잃고 있었다. 그 끄적임이 아니었다면 <브런치 공모전>에 대한 공지를 보지도 못했을 테니, 어쨌든 끈을 놓지 않은 것이 내게는 좋은 결과로 다가온 셈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왠지 내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계산을 해보니 공모전 마감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하루에 한 편씩 쓰면 10편 정도는 금방 쓰지 않을까 하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자신감이 나를 그것이 운명이라고 믿게 했다. 아마도, 정지음 작가님도 공모전을 앞두고 작가 신청을 했다, 는 말이 운명이라고 믿는데 분명히 한몫했던 것 같다.


나는 일단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주제는 있었지만, 어떤 내용을 통해 주제에 다가가야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고민을 하면서, 내가 작가 신청을 하지 못하고 그동안 망설이고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전에 일은 했었지만, 경력단절 여성으로 꽤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무언가 쓸만한 소재가 없다는 것.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일상을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음에도 특별한 이야기를 써야만 작가 신청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그 친구도 나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특별히 쓸만한 소재가 없어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이유 때문에 작가 신청을 미뤄왔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틀 만에 나는 글의 구성을 어떻게 해 나갈지 대충 정리할 수 있었다(실은, 이틀 만에 갈피가 잡히고 나서야 공모전을 알게 된 것이 어떤 운명 같다고 더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한 달 안에 글도 쓰고 작가 신청도 해야 되었기에 나는 빨리 글쓰기에 착수해야만 했는데 다행히도 이틀의 시간 동안 글쓰기 방향이 정해진 것이었다.

그 당시 내가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는지는 나 조차도 알 수는 없다. 저 어쩌면 살기 위해서 글을 썼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그 순간을 어렴풋이 회상할 뿐이다. 글쓰기의 목표가 생기자, 매일 세 시간씩 앉아서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나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오랫동안 침대와 한 몸이 되어야 했다. 안 그래도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에너지를 탈탈 털어 글 쓰는데 투자했으니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내가 매일 글쓰기에 진심으로 매달린 이유는 오로지 나의 정신을 위해서였다. 글을 쓰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보다 하루를 견디기가 쉬워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 게다가 작가 신청을 하려면 한 달 이전에 해야 했기에 내겐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에 쓸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루에 한 편씩 글이 써졌다면 좋았겠지만, 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잘 써졌고, 어떤 날은 꽉 막혀 한 줄도 쓰기 힘들었다. 꾸준히 글쓰기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글을 쓰려니 글이 고구마처럼 턱턱 막히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집중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다시는 못할 것 같다. 매일 세 시간씩 글을 쓰고 소진하는 일련의 과정을 오로지 목표를 향하여 반복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 신청을 하고 한 번에 통과한다는 보장이 마치 주어진 것처럼 계획적으로 움직였으니 말이다.


나의 정신은 목표가 생기고 나서야 살아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들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생기자 살아갈 힘이 생겼고 없던 에너지도 생겼다. 신기하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불안하지 않았다. 내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말은 살지 말라는 말과 동음이의어가 아니었을까. 나는 나의 모든 시간을 통틀어 그때만큼 열심히 산 적도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나는 절실하게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살아내고 싶었고, 그것도 잘 살아내고 싶었다. 그러니, 그 당시 글쓰기는 나를 살린 글쓰기였다. 거창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런 것이 살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글을 다 쓴 뒤에 작가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앞에 쓴 세 편의 글을 올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삼 일 후에 작가 신청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난 진짜 작가가 된 마냥 뛸 듯이 기뻤다.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랫동안 망설였던 일이었는데 일이 되려니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한 번에 작가 신청을 받아내다니! 나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여기저기 소문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는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꼼꼼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나는 내가 느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느린 사람이라는 것을 절실히 알았다. 글을 쓰고 읽어 보고 다듬고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입말로 부드럽게 읽힌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지우고 고치기를 하다 보면 두세 시간은 금세 지나가 버린다. 며칠 묵혔다가 다시 꺼내 읽어보고 글을 다듬은 뒤에서야 비로소 글을 올린다. <브런치 공모전>에는 마감일 전전날에야 올릴 수 있었다. 그때 만들어진 글이 브런치 북으로 만들어진 <나의 행복 답사기>라는 글이다. 발행도 하기 전에 브런치 북으로 묶었다. 내게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빨리 묶어서 공모전 마감일 전에 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글쓰기가 오래 걸리는 사람이었으니 한 달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초반에 말한 하루 한 편씩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였던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모르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고. 모르면 과감해진다고. 아마도, 글쓰기를 너무 몰라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싶지만, 그 무지 덕분에 나는 도전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지 결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공모전에 글을 올리고, 그날 하루는 얼마나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주체할 길 없어 무작정 밖으로 나가 자연 속을 뛰다시피 걸었다. 목표를 세우고 몰두하는 과정 후에 오는 뿌듯한 성취감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게다가 내게는 이런 일이 꽤나 오랜만에 찾아온 일이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썼다고 말은 하지 않고, 어떤 공모전이 있어 글 쓰기가 끝났는데 너무나 후련하고 좋다는 말을 했다. 언니는 내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들어주었다. 자세히 묻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영원할 것 같던 마감에 대한 환희는 일일천하로 끝이 났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나는 태생적으로 부끄러움을 남들보다 몇 만배 타고난 사람인 듯 싶었다. 부끄러움이 몰려오자 공모전 취소 버튼의 유혹에 시달렸고 공모전 마감일까지 남은 이틀을 브런치 근처에도 안 가는 것으로 버티었다. 마감일이 지나면 나는 취소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기에.



나는 몇 년 전 책 읽기에 심취하면서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들은 모든 민낯을 세상을 향해 드러낼 수 있을까? 나라면 가리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 당당히 세상을 향해 꺼내 놓을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작가란,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용기가 진심 부러워졌다. 부끄러움이 많고 늘 주저하고 망설이는데 에너지를 쏟고 시간을 소비하는 나 자신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이는 것이었다(부끄러움 또한 나를 느린 사람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꽤 오랫동안. 생각만으로.

그러니, 몸이 아픈 계기가 내게는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더 이상 주저하지 못하게 코너로 몰린 나는 그 덕분에 작가 신청도 하고 공모전에 응모도 할 수 있었다. 만약에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또 주저할 핑계를 찾아대며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아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다가온 나쁜 일이 때론 좋은 일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므로, 나쁜 일이라고 그저 안 좋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나의 행복 답사기>도 그런 의미의 글이다. 힘들었던 과거의 상처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순간, 나는 진정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늘 지워버리고 싶었던 과거가 '행복'으로 느껴지기는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상처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의 감정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 감정을 느낀 후로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아주 사소한 일들이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상처를 긍정하자 현재의 모든 것들이 긍정으로 화답했다. 현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으나, 내 생각이 바뀌자 현실이 달라져 보인 것이었다.

사실은, 행복하지 않았었던 일들에 관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행복 답사기'가 된 이유는 그때 느낀 나의 감정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되짚어 보니 내게는 항상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주었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데, 나는 이 말을 직접 깨달은 셈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정신력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