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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이야기

1. 사고

by 해안

* 이 글은 개인의 트라우마적 사고나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유의 부탁드립니다.


유난히 버거움을 이기기 어려운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새벽 늦게 집에 가다 편의점에 들렀다.

그리고 매번 마셔볼까 고민하다 만 맥주를 사서 야외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혼자가 되는 것보다 혼자가 되는 듯한 기분을 더 두려워했다. 그날따라 엄습해 오는 그 느낌에 술주정 마냥 주변 탁자 나를 향해 말했다.

왜 혼자 술을 드시고 계신가요?
지금 사는 건, 행복하신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황스러울 만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돌아오지 않는 답, 나조차 답하지 못해 적막한 그곳을 뚫고 집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공사가 한창이던 아파트 계단, 쉬어가라는 의자에 앉았다. 생각의자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창밖을 봤다.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시원했다. 속이 풀렸다. 그래, 난 자유롭고 싶었다. 삶은 갑갑한 것 투성이었다.

한참 밖을 보다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잘 준비를 마치고 하루를 돌아보던 나는,

새벽 5시 30분경 아파트 8층 창가에서 추락하여 지나가던 택배기사님에게 발견되었다.


곧바로 구급차가 왔고, 경찰에 의해 우리 가족은 소식을 들었다. 그때의 마음을 나는 아직도 다 알 수가 없다.

엄마는 구급차에 탔고, 맨발로 뛰쳐나온 아빠는 동생과 자가용으로 뒤따라왔다.


서울에서 이송거부를 여러 번 겪으며 돌던 구급차는, 구로구의 한 병원서는 응급실 앞에서 제지당했다.

엄마는 자신도 막는 경비원들 앞에서 내 딸 좀 보라며 울다 주저앉았다.


나는 3시간이 지난 9시 즈음에야 분당의 국군수도병원에 이송되었다.

도착하고 얼마 뒤에는 다리 쪽 골절에 대한 두 차례의 응급수술을 받았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넘 깨어났다.

내게 이것저것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눈을 깜박이고 대답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간호사들이 내게 몸을 움직여보라고 했다.

그러나 머리 아래 그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알게 된 내 진단명은 다음과 같다.

상세불명의 편마비
대퇴골 몸통의 골절, 개방성
두피의 표재성 손상
흉강내로의 열린상처가 없는 외상성 기흉
제1늑골을 침범하지 않은 다발골절, 폐쇄성
기타 경골 하단의 골절, 폐쇄성
경부척수의 손상 NOS
상완골 하단의 기타 및 다발성 골절, 개방성


그렇다. 나는 마비환자가 되었다.


사고 후 3개월, 주요 수술을 다 마치고 나는 재활을 받고 있다.

걷지 못하고 손쓰지 못한 시간을 지나 하나씩 할 수 있는 게 는다.

내게 찾아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시간이기에 긍정적인 이야기만 담을 순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웃음이 나고 감동을 받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도울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이야기가 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겪은 경험과 더불어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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