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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까지의 이야기

1. 사고

by 해안

하루는 하루 하루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날도 그날들이 만들었다.

그날까지의 내 이야기를 풀어보려한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지 4년이 되어간다.

아픔을 설명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왜 강의를 듣다 뛰쳐나가 빈 강의실에 드러누웠는지, 왜 길에 주저앉아있었는지.

공황발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양치하다가, 자다가도 찾아왔다. 식은 땀이 흐르고 울렁거림과 함께 숨이 답답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려야만 했다.


단 한 번의 공황발작에도 후유증이 왔다. 불안함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가슴이 답답하고 공간이 갑갑해지면 벗어나려 했다. 미리 피하기도 했다. 모임 중엔 버릇을 핑계로 밖에 나가있었고, 지하철과 사람 많은 버스도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타지 않았다.


매일 약을 챙겨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약의 양은 늘고 줄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잠을 못자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잠은 안 오고 무수한 생각만 들었다. 뒤척이다 동이 트는 날이 많아졌다. 잠깐의 수면 이후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도 잠에 못 드는 밤이 괴로웠다. 자고 싶어 술을 마시는 날도 있었다. 몸에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내가 미웠고 싫었다.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지만 잠에 제대로 들진 못했다.


그러다 이상한 일을 맞이했다. 수면제 부작용이었다. 밤에 무언가를 먹거나 누군가에게 연락하고도 기억을 제대로 못하는 일이 생겼다. 새벽에 밖에 나갔다 와 아침에 흔적을 보고 알기도 했다. 마치 몽유병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집에 들어가 동생에게 편지를 쓰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인스타 스토리를 남기고 카톡도 했다. 계단을 올라갔고 창가에도 앉았다. 희미한 기억속 일이다.


그렇게 사고가 일어났다.


이유 없는 사고는 없다. 그날까지의 일을 돌아보고 나를 마주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해 피하는 것들이 많다.


자발적인 사고가 누군가에겐 좋지않게 보일 수 있음을 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억을 꺼내는 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나를 안아주지 못한 시간이 충분히 길었기 때문이다.


티내지 않으려 웃고, 몰래 물 없이도 약을 꿀꺽 넘기면서도 방에서는 책상 밑에 웅크려있던 나. 벽에 위로의 글귀를 붙이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던 나. 베란다 구석에 앉아 울던 내가 안쓰러워졌다.


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챙기는 게 중요함을 긴긴 밤을 지나서야 알았다. 나를 조금 더 생각해도 됨을 아플 만큼 아프고 알았다.

슬픔은 지나쳐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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